합수 정신으로 평화와 통일을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통일경제포럼 공동대표익산참여연대 고문

 
 1980년 나는 대학 2학년이었다. 대학가에서 민주화 시위 없이는 하루해가 지나지 않던 이른바 ‘서울의 봄’을 보내며 한 번도 시위에 참여해보지 않았다. 5월 광주항쟁은 “북괴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의 반란”이고 김대중은 “내란의 수괴 빨갱이”라는 뉴스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야말로 의식 없고 개념 없는 정치학도였다.
  
 2002년 뉴욕의 민족통일학교에서 강연하면서 그 학교를 세웠다는 윤한봉 선생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그 때 나를 초청했던 뉴욕 동포가 2009년 고국을 방문해 ≪윤한봉 회고록 망명≫을 건네며 읽기를 권했다. 광주항쟁을 ‘폭도들의 반란’이라고 생각했던 ‘민주화의 죄인’이 광주항쟁의 ‘주모자’이자 ‘민주화의 대부’를 기리는 자리에 앉게 되어 매우 어색하다.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지 못한 죄를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평화통일운동에 한쪽 발이나마 걸쳐놓은 늦깎이로서, 합수 정신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고민해보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영광스럽기도 하다.

 (*'합수'는 '5.18의 마지막 수배자'로 불리던 고 윤한봉 선생의 호입니다.-편집자 주)

1. 분단과 전쟁이 지속되는 한반도
1) 왜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하는가
 
한반도가 1945년 8월 분단됐으니 72년이 흘렀다. 남북 양쪽 정부는 다양한 통일방안을 다듬어왔고 양쪽 주민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외쳐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통일은커녕 통일의 문턱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통일보다 분단이 유지되는 상태를 선호하는 세력의 힘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남쪽에서는 반공과 반북을 통해 친일의 죄악을 덮으며 분단을 통해 정권을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었고, 북쪽에서는 적대 관계를 이용해 부자 세습까지 정당화하고 미화할 수 있었다.
  
2) 왜 아직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가
 
한국전쟁은 ‘실질적으로’ 1953년 7월 끝났다. 그러나 ‘법적으로’ 또는 ‘완전히’ 종식되지 않고 있다. ‘정전’협정이나 ‘휴전’협정을 ‘종전’협정이나 ‘평화’협정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전쟁을 완전히 매듭짓자고 줄기차게 요구해왔지만 미국과 남한은 한사코 거부해왔다. 왜 그럴까? 남한 독재정권과 미국에겐 한반도의 평화정착보다 남과 북의 적대적 공존을 통해 얻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냉전시대엔 소련과 공산주의 확장을 저지하고 봉쇄하면서 북한을 겨냥했다. 1958년부터 1991년까지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했던 배경이다. 탈냉전시대엔 중국의 급성장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북한을 빌미로 삼아왔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완전히 끝나고 평화가 정착되면 주한미군을 유지할 명분이 사라지거나 약해지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큰 구멍이 뚫리게 된다. 중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을 유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북한과의 군사적 갈등과 긴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2.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
 2010년대 동북아정세가 요동친다. 중국의 급성장과 도전에 따른 미국의 견제와 봉쇄 때문이다. 급속하게 떠오르는 중국과 점진적으로 쇠퇴하는 미국이 동북아 패권을 놓고 격돌하고 있는 것이다.
  
1) 중국의 급성장과 도전: ‘접근반대 및 지역거부’와 ‘새로운 대국관계’
 
중국은 1978년부터 개혁개방을 시작해 1992년 본격적으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며 30년 이상 연 평균 10% 안팎의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해왔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 (WTO)에 가입하면서 무역 규모도 급속하게 증대되었다. 2009년엔 독일을 제치고 세계 제1 수출대국이 되었고, 2010년엔 일본을 추월해 세계 제2 경제대국이 되었다. 2012년엔 미국을 따돌리고 세계 제1 무역대국이 되었으며, 2014년엔 구매력 GDP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 경제대국이 되었다.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1990년대부터 국방비를 연 평균 10% 이상 늘리며 군사력도 크게 증강시켜왔다. 2010년부터는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군사강국들보다 2배 이상의 국방비를 지출해오고 있다. 특히 해양 전력을 본격적으로 증강시키며 대만해협을 포함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개입을 무력화하는 작전을 세워놓고 있다. 중국과 가까운 바다에서는 미국 함대의 접근을 막고, 조금 더 먼 바다에서는 미국 함대의 작전을 방해하겠다는 내용으로, 이른바 ‘접근반대 및 지역거부 (反介入/区域拒止, anti-access and area-denial)’ 전략이다. 2013년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고, 2014년부터 남중국해 난사군도 주변에 인공섬을 건설한 이유다. 미국과 태평양을 같이 나누어 쓰자며 이른바 ‘새로운 대국관계’를 요구하는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2) 미국의 견제와 봉쇄: 아시아에서의 ‘재균형’, 미일동맹 강화 및 싸드 배치
 
위와 같은 중국의 급성장과 도전에 미국은 1990년대 초부터 경계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끝나자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국가로 간주한 것이다. ‘중국 위협론’을 내세우며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게 일본과의 군사동맹 강화다. 미국은 1996년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내놓고, 1997년엔 일본 자위대의 무력행사 범위를 확장하는 새로운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발표하며,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일본의 재무장을 막고 있는 ‘평화헌법’을 수정하여 ‘정상국가’가 되도록 촉구하면서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도록 지원해왔다. 2013년엔 일본이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동중국해 센카쿠/댜오위다오를 일본의 관할지역으로 인정했다. 아울러 이 지역에 대한 미군의 자동 개입을 확인하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2014년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관한 헌법 해석을 변경함으로써 사실상 평화헌법을 고쳤고, 미국은 이를 반영해 자위대가 일본 밖에서도 활동할 수 있도록 2015년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다시 개정했다.
  
또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2011년부터 아시아로 ‘회귀 (pivot)’한다거나 아시아에서 ‘재균형 (rebalancing)’을 이루겠다는 정책을 펼쳐왔다. 중국의 미국에 대한 ‘접근반대 및 지역거부’ 전략을 무력화하겠다며 대외전략의 중심축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기겠다는 새로운 전략지침을 확정했다. 2020년까지 미국 해군함정의 60%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증강 배치하면서 일본, 한국 등과의 군사동맹 및 호주, 필리핀 등과의 군사협정 그리고 이 지역에서 실시해 온 양자 및 다자간의 군사훈련을 강화하겠다는 등의 내용이다. 나아가 일본과의 군사동맹 강화를 넘어 한미일 군사공조 강화도 추진해왔다. 2015년 한일 간의 ‘위안부 협상’을 강요했던 이유요 2017년 남한에 싸드 배치를 강행하는 배경이다.


3. 남한의 통일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1) 남한의 통일정책
 
2017년 현재 남한의 통일방안은 1989년 노태우 정부가 처음 만들고 1994년 김영삼 정부가 조금 고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다. 자주, 평화, 민주의 3대 원칙을 바탕으로 (1) 화해협력, (2) 남북연합, (3) 완전통일이라는 3단계를 거쳐 통일을 실현한다는 내용이다. 오랜 세월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 아래서 살아온 남과 북이 갑자기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2) 대북정책의 변화
 
1998-2008년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남한의 통일방안 1단계인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대북정책으로 ‘햇볕정책’ 및 ‘평화번영정책’을 폈다.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한과 북한의 통일정책 가운데 공통점을 바탕으로 통일을 모색하자는 ‘6.15합의’를 도출했다. 2007년 10월 제2차 정상회담에서는 갈등과 긴장의 서해 북방한계선 (NLL) 주변 해역을 평화협력지대로 만들자는 ‘10.4선언’을 불러왔다. 이에 반해 2008-2017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대북정책으로 ‘비핵.개방.3000’ 및 ‘한반도 프로세스’ 정책을 내세우며 북한이 핵무기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대화와 협력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제재와 압박을 통한 북한 체제의 붕괴를 추구하기도 했다.
  
3)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2017년 5월 10일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이어가겠다고 공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유세와 민주당 대선공약집을 통해, 그리고 6.15 기념식을 통해 2000년 ‘6.15합의’와 2007년 ‘10.4선언’을 중시하겠다고 했다. 취임사에서는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며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1급 회담 기술자’라는 별명을 지닌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정상회담은 필요하다”며 거들었다. 두 번의 정상회담에서 실무역할을 했던 조명균 통일장관은 2008년 중단된 금강산관광과 2016년 폐쇄된 개성공단을 재개하겠다고 강조했다.
  
2017년 6월 30일 문 대통령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며 북한에 대해 ‘최대의 압박’을 가하되 북한과 대화로 문제를 풀겠다고 합의했다. 아울러 한반도의 평화 통일 환경 조성에 남한이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점을 명시했다. 같은 날 전략국제연구센터 (CSIS) 초청 연설을 통해서는 이른바 ‘대북 4노 (no) 원칙’을 밝혔다. 북한에 대해 ‘적대시 정책’을 추진하지 않고,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으며, 북한 정권의 ‘교체나 붕괴’를 원치 않고, ‘인위적 통일’을 가속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문 대통령은 2017년 7월 6일 독일 베를린 쾨르버 (Korber) 재단 초청 연설에서 포괄적 대북정책을 제시했다.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및 2007년 제2차 정상회담을 비롯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노력을 계승하면서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담대한 여정”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무시했던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이행을 강조하며, 북한 붕괴 및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혔다. ‘항구적 평화 체제 구축’ 또는 ‘항구적 평화구조 정착’을 위한 ‘종전’과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했다. “북핵문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인도적 대북지원을 비롯한 ‘비정치적 교류협력 사업’은 정치 군사적 상황과 분리해 추진하겠다는 점도 밝혔다. 이른바 ‘정경 분리 원칙’이랄 수 있다.

4. 북한의 통일정책과 김정은 정부의 병진노선

1) 북한의 통일정책
 
북한의 통일방안은 1960년의 ‘남북련방제’와 1973년의 ‘고려련방공화국’을 거쳐 1980년의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 방안까지 한 마디로 연방제다. “북과 남에 있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두고 북과 남이 련합하여 하나의 련방국가를 형성”하자는 내용이다. 남과 북이 자신의 이념과 체제를 선호하고 유지하기 원하는 한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 두 개 정부에 기초한 련방제방식”이 “가장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방도”라는 것이다.
  
1980년대 말부터 동독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이 붕괴되자, 김일성은 1991년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경계한 듯,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구에게 먹히우지 않는 원칙”으로 연방제를 추구하자고 했다. 초기엔 남과 북의 지방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점차적으로 중앙정부의 기능을 높이자고 했는데, 중앙의 연방정부보다 지방정부가 더 큰 권한을 가진 초기 단계가 이른바 ‘낮은 단계의 연방제’다. 남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두 번째 단계인 국가연합과 비슷한 형태라 할 수 있다.
  
2) 김정은 정부의 병진 (竝進) 노선과 핵.미사일 개발
 
북한은 1990년대 초부터 큰 어려움에 처했다. 밖으로는 1980년대 말부터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1993-94년엔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미국이 경제 제재를 강화하며 금세 폭격할 태세였다. 안으로는 나라를 세우고 반세기나 통치해온 김일성이 1994년 갑자기 죽고, 인민들이 굶어죽을 정도의 극심한 식량난을 겪게 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러한 나라 안팎의 위기를 극복하며 체제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앞세워 통치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과 함께 전개된 ‘선군 (先軍) 정치’다.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하자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3년 3월 군사 건설과 경제 건설을 함께 발전시키겠다는 소위 ‘병진노선 (竝進路線)’을 채택했다. 핵무력을 중심으로 군사력을 건설함으로써 재래식 군비를 줄여 이를 바탕으로 경제를 건설하며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이다. 군사를 앞세운다는 ‘선군 (先軍) 정치’에 경제를 앞세운다는 ‘선경 (先經) 정치’를 덧붙인 셈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2003년 4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적어도 예닐곱 번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2006년 10월 제1차, 2009년 5월 제2차, 2013년 2월 제3차 핵실험에 성공했다. 2013년 4월 헌법을 수정 보완하면서 서문에 “김정일 동지께서는..... 우리 조국을.....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만들었다고 명시했다. 2016년 1월 제4차 핵실험에서는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고, 2016년 9월 제5차 핵실험을 통해서는 핵탄두를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게 됐다고 선언했다.
  
또한 북한은 1998년 8월 처음으로 인공위성을 시험 발사했다. 2006년 7월, 2009년 4월, 2012년 4월까지 4차례 실패하다 2012년 12월 5번 만에 성공했다. 북한은 2017년 1월 김정은의 신년사를 통해 “대륙간 탄도로케트 시험발사 준비가 마감 단계”라고 밝힌 뒤 다양한 미사일을 쏘아올리다, 2017년 7월 ‘대륙간 탄도미사일 (ICBM)’ 시험발사도 성공했다.
  
이와 관련해 북한 국방과학원은 2017년 7월 4일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국가 핵무력 완성을 위한 최종 관문인 대륙간 탄도로케트 <화성-14>형 시험발사의 단번 성공은 위대한 조선로동당의 새로운 병진로선의 기치 따라 비상히 빠른 속도로 강화 발전된 주체 조선의 불패의 국력과 무진 막강한 자립적 국방공업의 위력에 대한 일대 시위이며 세기를 두고 강위력한 국방력을 갈망해온 우리 공화국의 력사에 특기할 대경사, 특대사변으로 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무기와 함께 세계 그 어느 지역도 타격할 수 있는 최강의 대륙간 탄도로케트를 보유한 당당한 핵강국으로서 미국의 핵전쟁 위협공갈을 근원적으로 종식시키고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믿음직하게 수호해나갈 것이다.”
 
북한 외무성은 7월 7일, “우리의 핵문제, 탄도로케트 문제는 철두철미 조미 사이의 문제이며 이번 대륙간 탄도로케트 (ICBM) 시험발사는 다른 그 어느 나라도 아닌 바로 미국에 보내는 선물보따리”라며, “우리가 미국의 심장부를 마음먹은 대로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이 물리적으로 과시됨으로써 미국은 감히 우리를 들이칠 엄두를 내기 힘들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우리가 적대 세력들의 끈질긴 압박과 제재 속에서도 새로운 병진노선의 기치를 높이 들고 강위력한 핵전쟁 억제력을 백방으로 다져온 것이 가지는 세계사적 의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5. 합수 정신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자주와 반전반핵을 통한 평화통일’

합수 윤한봉 선생은 1970년대 유신 반대 민주화운동을 하다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됐다. 1980년 5월 광주항쟁 주모자로 수배되자 1981년 미국으로 밀항해 1993년 귀국할 때까지 미국에서 한국의 민주화 및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 그가 1989년 주도했던 <코리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제평화대행진>엔 전 세계 70여개 진보정당과 단체를 포함해 300여명의 평화운동가들이 동참했다. 이들이 미국과 한반도에서 행진하며 내세운 구호는 “코리아는 하나다,” “반전 반핵,” “미군 철수, 핵무기 철거,” “평화협정 체결” 등이었다. 한 마디로 ‘자주와 반전 반핵 그리고 평화협정을 통한 평화통일’을 외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 거의 한 세대가 흐르도록 이루어지지 않은 채 한국 진보세력의 과제로 남아 있다. 다음과 같다.
  
1) 자주에 대하여
 
합수 선생이 ‘미군 철수’를 외치며 강조한 자주 통일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의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이라는 3대 통일원칙 가운데 맨 먼저 나오는 조항이기도 하다.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주’는 북한에서는 가장 강조하는 대목이지만 남한에서는 가장 꺼리는 사항이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1960년 4월혁명 발발과 함께 남한 사회에 크게 확산됐던 중립화통일 논의가 1961년 5.16쿠데타 직후부터 지금까지 탄압 받거나 외면 당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립’이란 외세의 철수를 의미하고, 외세는 주한미군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남한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51번째 주 (the 51st state of the United States)”라는 조롱이나 경멸을 받을 만큼 비자주적이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12-15위를 자랑하지만 군사적으로는 미국에 예속적 또는 종속적이지 않은가. 남한이 주한미군으로부터 평시 작전통제권을 1994년 돌려받고, 전시 작전통제권은 2012년 되찾기로 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전작권 환수를 2015년으로 미루었고, 박근혜 정부는 무기한 연기했다. 문재인 정부의 송영무 국방장관 후보를 비롯해 군부 일각에서는 북한을 ‘괴뢰 (傀儡)’라 부르는데, 작전통제권조차 갖지 못한 비자주적 남한 군부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주체와 자주를 앞세우며 자주외교와 자주국방을 실현해온 북한을 ‘괴뢰’라고 부르는 것처럼 가소로운 일이 있을까.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6월 30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 통일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대한민국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했다”는 문구를 집어넣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다음날 재미동포 초청 간담회에서는 한미정상회담 성과를 설명하며 “남북관계에서 주변국에 기대지 않고 우리가 운전석에 앉아 주도해 나가겠다”고 했다. 1998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진 후 “김 대통령이 운전대를 잡고 나는 보조하겠다”는 클린턴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7월 6일 독일 베를린 연설에서도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담대한 여정”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한반도 평화 통일과 관련해 당사자 남한이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것까지 미국의 양해나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는 자조 섞인 물음을 던질 수도 있지만, 막강한 힘과 영향력을 지닌 세계 제1의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이 한반도 분단과 한국전쟁에서부터 북핵문제까지 결정적 역할을 해온 현실을 감안하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미공동성명에 “양 정상은 조건에 기초한 한국군으로의 전작권 전환이 조속히 가능하도록 동맹 차원의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결정했다”고 명시한 것은 자주성 회복 차원에서 크게 진전된 대목이다. ‘조속히’ 환수하기로 했으니 문재인 정부 임기 안에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남한이 자주적으로 또는 주도적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데는 한계나 걸림돌이 있기 마련이다. 문 대통령이 미국과 독일 방문을 마치고 7월 11일 가진 국무회의에서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이라고 실토한 점도 이를 보여준다.
  
첫째,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서다. 앞에서 얘기했듯,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가장 큰 대외정책 목표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해 세계 패권을 지키는 것이다. 북한을 빌미로 주한미군을 유지하고 주한미군을 통해 중국을 봉쇄하기 때문에 오히려 북한의 ‘도발’을 부추겨온 게 아닌가. 미국이 싸드 배치를 강행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참고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자, 중국은 러시아와 최대 규모의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양국간의 협력을 강화해왔다.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이 결합된 한미일 공조 강화는 중국과 러시아로 하여금 북한을 끌어들이도록 이끌고 있다. 2017년 7월 독일에서의 G20 정상회담에서 드러났듯, 냉전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남한+미국+일본의 남방 삼각 공조와 북한+중국+러시아의 북방 삼각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미국과 중국의 경쟁 관계와 미국과 북한의 적대 관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이 강해질수록 한중관계는 멀어질 수밖에 없고, 남북관계는 가까워지기 어려울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과의 협력을 추구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게 쉽거나 가능할까.

 둘째, 남한의 보수극우 세력은 ‘친미 반북’을 앞세우며 한반도 평화를 해치는 미국의 정책도 적극 지지하며 북한과의 화해협력은 극도로 거부한다. 분단 구조를 통해 기득권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라는 ‘수단’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목표’보다 중시한다. ‘박근혜 탄핵 반대’를 외치면서도 성조기를 흔들고,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경제적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싸드 배치를 지지하는 이유 아니겠는가.
  
2) 반전 반핵에 관해
 
합수 선생이 1980년대 말 외쳤던 ‘반전 반핵’은 당시 남한과 미국의 대규모 연합군사훈련을 반대하고 남한에 배치된 주한미군의 핵무기를 반대하는 것이었다. 군사훈련과 관련해, 남한과 미국이 ‘방어’ 훈련이라 했지만 북한은 ‘북침’ 훈련이라 비난했던 ‘팀 스피리트 (Team Spirit)’는 1976년부터 1993년까지 실시되다가 1994년 북핵문제를 협상하면서 북한의 요구로 중단됐다. 1995년부터 ‘연합전시증원훈련 (RSOI)’이 도입되고, 2002년부터 ‘독수리훈련 (Foal Eagle)’과 통합되었으며, 2008년부터 ‘키 리졸브 (Key Resolve)’라는 이름으로 실시되어오고 있다. 2016년부터는 ‘김정은 참수 (斬首) 작전’까지 포함되었다.
  
주한미군의 핵무기와 관련해, 미국은 늦어도 1958년 1월부터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1956년 6월 남한에 주재하던 중립국 감시위원단 16명을 추방하고, 1957년 6월엔 새로운 무기 도입을 막는 정전협정 제2조 13항을 일방적으로 폐기했다. 남한에 배치된 핵무기는 1980년대 말까지 국회에서조차 존재 여부를 논의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한 비밀이었지만, 대학생들이 1980년대 중반부터 반미운동과 아울러 반전 반핵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합수 선생은 미국에서 이 운동을 이끌었다.

 남한 정부와 언론은 이를 거세게 비난했다. “미국의 핵 우위와 미국의 핵우산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존립하는 세상을 우리가 살아온 것”이라거나 “우리가 미군의 상주를 필요로 하고 위험 부담을 안은 채 그들의 핵 지원을 마다하지 않으며 ..... 한미 합동군사훈련 팀스피리트를 해마다 하는 이유는 불을 보듯 환하다. 즉 살아남기 위해서인 것이다”고 강변했다. “북괴의 구호를 대변해서” 외친다며 반전 반핵 주장을 친북 행위로 매도하기도 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미국은 남한에 배치했던 2,000개 이상의 핵무기를 철수했다. 해군 핵무기는 “적당한 때에” 재생하거나 재배치할 수 있도록 했고 핵무기 저장시설도 유지하도록 했다. 그리고 남한에 지속적으로 핵우산을 제공하며, 핵무기로 무장된 잠수함을 한반도 주변 해역에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1990년대 초부터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앞에서 소개했듯, 2006년 10월부터 2016년 1월까지 네 번 핵실험을 했다. 원자폭탄뿐만 아니라 수소폭탄까지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남한엔 ‘북핵 문제’에 대해 일방적 주장이나 왜곡된 시각이 있다.
  
첫째, 남한과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만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은 ‘한반도/조선반도의 비핵화’를 같이 논의하자고 한다. 주한미군의 핵무기도 문제 삼는 것이다.
  
둘째, 과거 남한에 배치됐던 핵무기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꼭 필요했지만, 지금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는 한반도 평화에 커다란 위협이 된다고 인식한다. 이와 비슷하게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이 핵무기와 미사일로 북한을 위협하는 행동이나 한미 합동군사훈련은 ‘합법’이며, 이에 맞선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은 ‘불법’으로 간주한다. 2017년 6-7월 6.15기념식 축사에서부터 한미정상회담을 거쳐 베를린 연설까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대해 ‘도발’이란 표현을 10번 이상 사용한 배경일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는 현실은 불만스럽더라도 ‘도발’이란 말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 미국은 각종 핵무기와 미사일로 북한을 위협해왔다. 남한에 핵우산을 제공하며 핵무기를 실은 다양한 함정을 한반도 주변 해역에 배치해놓았다. 1990년대엔 폭격할 뻔했다. 2000년대엔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협박하기도 했다. 2016년부터는 김정은의 목을 따겠다는 이른바 참수작전을 포함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남한과 합동으로 실시한다.

이런 터에 북한이 미국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북한엔 주한미군 같은 외국군대가 없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핵우산도 받지 않고 있다. 남한과 미국은 해마다 10번 안팎의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벌이지만, 북한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끌어들여 단 한 번도 합동군사훈련을 갖지 않는다. 북한 국방비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남한의 1/5을 넘지 못하고 미국의 1/100에도 미치지 못한다. 재래식 군비경쟁을 도저히 할 수 없기에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달리지 않겠는가. 많은 인민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큰돈 들여 핵과 미사일 개발에 힘쓴다고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걸핏하면 북한을 폭격하겠다고 위협하는 가운데 북한 지도부를 제거하겠다는 ‘훈련’까지 지속하면서,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것을 ‘도발’로 규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문 대통령은 이런 왜곡된 시각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maximun pressure)’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며 중국에까지 북한에 대한 압력을 요구했다. 중국은 이른바 ‘북핵 문제’가 ‘북한과 미국 사이의 모순’이라며 북한에 대한 미국의 폭격이나 전쟁 위협이 없었다면 ‘북핵 문제’는 이미 해결됐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또한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이 못마땅해도 자신의 안보를 위해 북한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재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남한과 미국의 군사훈련과 북한의 핵개발을 같이 중단하자는 이른바 ‘쌍중단 (雙中斷)’을 제안했다. 미국은 한사코 거부한다. 그리고 남한의 보수극우 정당과 언론은 미국보다 더 거세게 반대한다. 남한의 보수극우세력과 미국은 북핵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조금도 없는 것이다.
 북한이 ICBM을 발사한 7월 4일,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러-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과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을 동시에 중단하는 '쌍중단'과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체제 구축을 병행 추진한다는 '쌍궤병행'을 기초로 하는 한반도 위기 해결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3) 평화협정에 관해
 
 앞에서 얘기했듯, 한국전쟁은 ‘실질적으로’ 1953년 7월 끝났지만 ‘법적으로’는 종식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오래 전부터 평화협정을 맺자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지만, 미국과 남한은 ‘당분간’ 정전협정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북한과 미국이 더 이상 싸우지 말자며 전쟁을 완전히 끝내버린다면 주한미군이 유지될 명분이 없어지거나 약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7월 6일 독일에서의 연설을 통해 평화협정에 대해 얘기했다. 남한 대통령의 평화협정 언급 자체가 획기적이다. 그러나 구체적 과정은 말하지 않고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여기서 ‘완전한 비핵화’가 북한만의 핵무기 완전 폐기를 뜻한다면 실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없이 핵무기를 폐기할 생각조차 하겠는가.
  
이에 나는 3단계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한다. 60년 이상 유지되어온 정전체제를 일시에 변경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북한은 앞으로 반드시 껴안아야 할 동포라는 민족적 시각과 미국은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동맹이라는 자주적 인식을 지녀야 할 것이다.
  
제1단계로, 미국은 북한에 대한 폭격이나 전쟁 위협을 그만두고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춘다. 한미합동군사훈련도 당연히 중단해야 한다. 남한이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도발’로 간주하고 한미동맹에 매달리는 한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조차 주도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제2단계로, 미국은 주한미군을 유지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평화협정을 맺는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꺼려하고, 북한은 주한미군이 유지되는 한 핵무기를 폐기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직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가장 큰 훼방꾼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제3단계로,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폐기한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은 군사력을 비슷하게 감축한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를 이루는 것이다. 나아가 남한이 제안한 국가연합이나 북한이 제안한 연방제 낮은 단계로 통일을 모색한다.
  
4) 평화통일에 관해
 
합수 선생이 외쳤던 ‘하나의 코리아’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것이었다. 여기서 평화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 없는 상태다. 전쟁은 폭력의 한 형태일 뿐이다. 따라서 평화통일은 전쟁에 의한 무력통일뿐만 아니라 인위적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도 배제하는 것이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6월 30일 미국에서의 연설을 통해 북한 정권의 ‘교체나 붕괴’를 원치 않고 ‘인위적 통일’을 가속화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북한은 남한이 붕괴를 운운하는 자체가 불쾌하기도 하고 가당찮을지 모르지만, 남한의 정책으로는 당연하다. 내가 1990년대 중반부터 주장해왔듯, 북한 붕괴는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이 붕괴되더라도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 보다 중국의 북한 점령이나 북한 군부에 의한 전쟁 가능성이 훨씬 클 것이다. 중국이 약 1500km의 국경을 마주하며 북한 구석구석에 엄청난 투자를 해놓고 있는 터에, 중국과 북한은 전통적으로 ‘이와 입술의 관계 (脣齒關係)’임을 주장하며 개입하기 쉽다는 말이다. 북한이 무너지면 미군이 압록강-백두산-두만강으로 이어지는 경계선까지 올라가 주둔하기 쉬운데 중국이 이를 용인할 수 있겠는가. 그게 아니라면, 100만이 넘는 병력과 첨단무기를 지닌 북한 군부가 남한에 순순히 투항하기보다는 결사항전으로 제2의 한국전쟁이나 최소한 게릴라투쟁이라도 전개할 가능성이 크다. 설사 북한의 붕괴가 외세의 개입이나 무력충돌 없이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로 이어진다 할지라도, 남한은 혼란을 수습하고 탈북자들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부족하다. 2017년 현재 3만 명 안팎의 탈북자도 제대로 껴안지 못하는 터에 북한이 붕괴되면 생길 2천만여 명의 ‘빌어먹을 사람들’을 어떻게 수습하겠는가.
  
따라서 남한과 북한은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평화적으로 공존해야 한다. 남쪽에서는 자유를 강조하되 복지정책을 확대하며 더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고, 북쪽에서는 평등을 중시하되 개혁개방을 추진하며 더 자유로운 사회로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자유와 평등이 어우러지는 복지국가로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합수 윤한봉 10주기 기념 학술심포지엄 (2017년 7월 20일 오후7시, 광주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 발표 논문이다.


[출처] 합수 정신으로 평화와 통일을|작성자 통일경제포럼

Posted by 익산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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