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를 넘어 인권으로
                  - 여성의 몸을 향유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

                  

                                                                  글 봉귀숙(익산여성의전화 사무국장)


  8월 15일 익산평화의소녀상 제막식 날,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 끼어 우중충한 날씨였다. 제막식 초반에 비 한번 뿌리고는 3부 영화<귀향>을 볼 때까지 더는 내리지 않았다.

  내가 제막식 행사장 주변을 정리하며 소녀상 근처로 다가갔을 때다. 하얀 머리에 쪽을 진 칠십대 여성이 소녀상을 한참을 말없이 응시하다 이내 손수건으로 소녀상 얼굴에 맺힌 물방울을 닦아 내었다. 나는 그 여성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며 서 있었다.

  잠시 후, 3부를 시작하려는지 주변이 시끄러워지자 그 여성은 소녀상에서 떨어져 몸을 돌렸고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조용히 묵례를 했고 그녀도 빙긋이 웃으며 눈인사를 하고 행사장을 빠져 나갔다. 황급히 빠져 나가는 그 여성의 걸음은 한 발자국 옮길 때 마다 죽어서도 묻고 갈 이야기가 후두득 후두득 쏟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소녀상 앞에서 한참을 바라보고 말없이 돌아서는 그 여성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여성운동은 오랫동안 성과 관련한 폭력 경험에 대해 피해자인 당사자가 증언하는 ‘말하기’ 방식을 취하고 있다. 피해자는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덧씌운 가부장적인 굴레를 벗어내고 여성 자신의 입장으로 사건을 재해석하고 재명명한다. 그럼으로써 사건에 대한 올바른 대안과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처럼 말하기는 무기력한 피해자에서 생존자의 위치로 이동하며 새로운 여성 정체성을 확립시켜준다 .

  그렇지만 피해자는 누구나 말할 수 있을까? 연령대별로 ‘말하기’는 차이가 있지만 60대를 넘긴 경우는 창피하고 수치스러워서 죽는 순간까지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익산여성의전화는 평화의소녀상 건립을 위한 모금활동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모금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안부의 문제를 일본군이 한국 여성의 순결과 정절을 짓밟은 사건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한국 민족, 국가에 대한 침범으로 확장되어 버린다. 여성의 순결은 한국 국가의 소유의 것으로 등치됨으로써 일본은 이를 무참히 짓밟은 파렴치한 존재인 것이다. 이런 관점은 ‘위안부’ 생존자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순결을 빼앗겼다는 혹은 정조를 짓밟혔다는 남성적 잣대를 강화시켰다. 이는 ‘위안부’ 생존자들을 ‘죄인’처럼 숨죽여 살게 하는 원인으로 작동한다. ‘위안부’라는 단어 대신 전쟁 시에 벌어졌던 성폭력으로, 성노예라는 단어로 바꿔야 하는 이유이다. 화냥년, 더럽혀진 년이라는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첫 단추인 것이다.

  익산평화의소녀상 건립 이후 많은 곳에서 동상 보존 문제에 대해 관심을 표하고 있다. 이들은 일제 침략으로 인해 우리 민족이 어떠한 핍박을 받았는지를 기억하며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운동으로 연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우리 지역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반가우면서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이 있다. 일본군에 의해 한국 민족 핍박으로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를 구체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평화의소녀상과 연결되는 평화운동은 “전쟁 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왜 가능했는가?”를 먼저 자문해야 한다. 그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거치며 동상 보존에 대한 의미와 활동 내용도 채워 나가야 된다. 이를 건너뛰거나 무시한다면 여성들의 몸은 언제든지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할 위험에 놓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은 상황에 따라 늘 남성을 위해 존재해 왔다. 전쟁 시에는 군인을 위로 해주는 몸으로, 평화 시에는 업무에 지친 남성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몸으로, 자신감이 없는 남성에게는 남성성을 확인시켜는 몸으로 말이다.
  
  남성을 위해 제공되는 몸을 지닌 여성들은 어떤 계층의 사람들인가? 일본군에 끌려간 여성들은 대부분 가난한 집 자식들이였다. 그러니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공부를 시켜주겠다는 말에 따라 간 것이 아닌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성매매 여성들은 누구인가? 집안에 머물 수 없는 수많은 이유 (가정폭력 · 근친상간 · 성차별)로 인해 집을 나와 떠도는 어린 여성들은 성매매 현장으로 쉽게 유입된다. 일부 대학생들은 학비를 벌기 위해 룸살롱·노래방에 일하는 것을 선택한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여성들의 몸을 향유하고 있는 것은 위안부 문제와 별개인가?

  우리는 현재에도 위안부 생존자와 같은 고통당하는 여성의 문제를 사회 구조적으로 이해하며 그들의 인권을 지켜내는 활동에 기꺼이 참여하거나 연대를 할 때만이 전쟁 시에도, 법과 치안이 허물어진 상황에서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건강한 사회,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줄여 나갈 수 있다.

Posted by 익산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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