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심 회원
한국스피치교육개발원 대표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익산지부 사무장
전북중요무형문화재 9-2호 판소리장단 이수자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아 아버지 눈을 뜨게 해 주겠다”고 인당수에 빠져 죽기로 작정한 심청이는 아버지가 눈을 뜰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믿었다면 맹인잔치를 열지 않고 눈을 뜬 사람을 위한 잔치를 했을 것이다. 눈을 뜰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공양미 삼백 석을 몽운사에 바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아버지의 믿음을 응원하기 위해 기꺼이 인당수에 빠져 죽은 심청을 나는 존경하고 사랑한다.

가라고 빨리 가라고 날마다 기도 올린 코로나19는 언제 갈지 기약조차 없이 우리 곁에 머물며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고, 가지 말라고 붙들었지만 나 몰라라 미련 없이 사라져버린 2020년, 세월의 흐름을 타고 친정어머니도 가셨다. 사실 나는 40여 년간 어머님과 사이가 안 좋았다. 어머님께 인정받고 싶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아들바라기가 습관이 되어 아들을 위한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시기 때문에 사이가 좋아질 수 없었다. 그래도 내 도리는 하겠다는 미음으로 작은 임대 아파트지만 아파트도 해 드리고 용돈도 드리고 연금도 넣어드렸지만 그 연금을 해약해서 아들을 줘 버리고도 아들, 아들, 아들 노래만 부르고 다니셨다.

막내아들이 사고로 하늘나라로 가던 날도 내 탓을 하시며 나를 힘들게 하셨다. 모든 것을 견디고 견뎠는데 어느 날 정신 차려 보니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줄을 서서 약을 타 먹으면서도 내 상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하고 있었다.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지금도 정신병원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은 딸이 인삼축제(2006년)에 초대되어 공연을 하러 가야 하는데 머리를 따주고 옷도 갈아입히려면 내가 같이 가야 했다. 공연 전 날 집에 가서 준비하려고 외출 신청을 했더니 보호자 없이 외출은 안 된다고 했다. 남편이 출장 갔기에 결국 잘 아는 교무님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오는데 그때야 내 정신으로 돌아 왔는지 아침까지 줄줄 흐르는 눈물, 정말로 돌아버릴 것 같았다.

“열심히 살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맞이하여 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았는데 어제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오늘의 허망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정신에 정말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이상심리학(학지사 30권) 전집을 구입해서 내 증상과 대입하며 열심히 읽었지만 10% 이상 해당된 병명이 없었다. 염증성 근육염 치료약 때문에 수반되는 우울증이라는 생각으로 약을 버리고 웃음치료, 미술치료, 최면치료 상담지도자 과정을 공부하면서 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단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최면치료 상담사 공부를 하며 다섯 살 때부터 기억을 연결해 가며 아버지, 어머니는 물론 가족 모두와 동네 사람들에게도 사랑 받으며 당당하게 살아가던 나를 만났다.

노란색 원피스에 빨간 구두 신고 가죽 가방을 맨 내 손을 잡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면서 예쁜 한복을 입고 예쁘게 웃어주던 엄마! 중학교 가던 첫 날 노란색 앙고라 스웨터를 사서 입혀 주시고 잘 다녀오라고 환하게 웃어 주던 엄마도 만났다. 집안 경제가 허물어지면서 “오빠 하나 제대로 가르치기도 벅차다. 오빠가 잘 되면 너희들을 잘 보살펴 줄 거야. 미안해.” 엄마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비로소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전까지 나도 큰 사랑을 받고 자란 귀한 아이었다 는 것도 알았다. 내 주변을 둘러 싼 많은 사람들에게 받았던 사랑과 덕담이 온 마음과 몸을 따뜻하게 감싸 주니 굳었던 마음과 몸이 풀리며 자존감이 살아났다. 내 안에 있던 속 시끄러움이 사라졌다.

그 때 나는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의 뜻을 응원하기 위해 인당수에 빠져 죽은 심청이와 다시 만났다. 심청이 반만 따라가자 그런 마음으로 어머님의 뜻을 응원하는 딸이 되기로 했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분위기 좋고 맛있는 곳에서 사드리고 원래 멋쟁이시라 한 벌을 사드려도 마음에 드는 옷을 사드리며 담담하게 내 이야기도 하고 엄마의 작은 소망은 바로바로 들어 드렸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친구가 되니 과도한 요구가 없어졌다. 어느 날 현관 키를 잃어버리셨다는 연락을 받고 번호키로 바꿔 드렸더니 비밀번호를 내 생일로 하셨다며 “내가 너를 안 낳았더라면 어쩔 뻔 했냐?“ 라시며 울먹이셨다.

심청이처럼 인당수에 빠져 죽지 않았기에 어머님은 심봉사처럼 감았던 눈을 떠 광명천지를 맞이하지 못하고 떴던 눈을 감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 내가 심청이처럼 인당수에 빠져 죽었더라면 어머니도 살고 나는 황후가 되어 다시 태어날 수 있었을까?, 어머님을 위해 죽어도 좋다는 생각은커녕 중환자실에서 호흡을 몰아쉬고 계실 때도 툭툭 털고 일어나시리라 믿었다. 강한 분이시니까. 그런데 어이없게 진짜로 가셨다 2020년과 함께 가셨다.

어머님께서 남기신 조의금으로 법연 장학회를 만들어 익산어린이판소리합창단 단원들에게 장학 품을 주고 의상비 마련을 위한 모금 답례품으로 사용하고 있다. 어머님을 모시고 일하는 느낌! 살아계실 때 보다 더 많이 자주 만나며 살고 있으니 행복하다.

코로나19로 더욱더 힘들어진 일상에 밀려 지금 처한 상황이 안 좋더라도 힘을 주니 힘이 든다는 것을 알고, 몸과 마음에 힘을 빼고 어느 한 때 좋았던 그 시절 생각하며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는지 기억하기, 춥고 시린 겨울 같은 날들 잘 견뎌 봄꽃이 필 때까지 기다리기’라는 말을 하고 싶어 신년 인사가 될 수도 있는 이 시기에 내 아픈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를 사랑해 주던 사람은 하늘에 많고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은 익산! 이 땅에 많이 있다. 하늘의 사랑! 태양과 달과 별의 훈증을 받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 내 옆에서 잠시 멀어진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오늘이, 오늘이 정말로 행복하다. 2021년은 누구나 다 나처럼 행복한 오늘을 살아가면 좋겠다.

 

 

 

Posted by 사용자 익산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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