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희망의 다른 이름
글 김지용 그린로드 대표
그날은 온 종일 돈 걱정으로 속을 끓이던 날이었다. 밥을 먹어도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질 않았고, 무얼 하고 있어도 정신이 딴 데 팔린 사람마냥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멍하게 기계적으로만 움직이고 있었다. 직원들의 월급날은 코앞으로 닥쳤는데 그때 내겐 돈이 한 푼도 없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그날 밤, 아내의 말에 의하면 내가 자다가 갑자기 숨이 넘어갈 듯한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 앉더라고 한다. 그 소리에 같이 잠이 깬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날 오래도록 안아 주었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내 등을 쓸어주고 토닥여주면서.
사업하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도 망하면 그냥 굶어 죽지 뭐, 하는 식으로 난 배짱이 있었고 자신감도 없지 않았었다. 그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다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최선을 다해도 되지 않는 일 역시 많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급속도로 위축되었고 참담함으로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늘 부모님의 보호와 조력 아래 또래 친구들에 비해서는 아쉬운 거 하나 없이 꽤 편하게 살아왔던 편이었던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돈 앞에서의 겸손함이 뭔지 처절히 깨달았다고나 할까.
2020년 3월, 사건의 발단은 코로나(COVID-19) 때문이었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한 지 수개월째에 접어들고 있을 때쯤, 갑작스레 거의 모든 판로가 막혔었고 그때부터 난 경영난을 겪기 시작했다. 상황은 나날이 심각해져 마침내 직원들의 월급이 밀리는 사태까지 간 것이다. 나 혼자였다면, 그냥 나 하나 망하고 죽는 거였다면 차라리 장렬히 끝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여러 명의 직원들을 두고 있었던 나는 그럴래야 그럴 수조차 없었다. 내가 뭘 잘못하거나 못나서 발생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할 모든 책임은 다 나에게 달려 있었으니까.


극한의 스트레스 속에서도 운영자금 해소를 위해 몸은 자동반사적으로 미친 듯이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하늘이 무심치 않으셨던지 마침내 기적이 일어났다! 그때 마침 익산시 기술보증기금 담당자님이 사무실을 방문하시게 되어 운영자금 관련한 조언을 해주셨던 것이다. 그분의 그 조언은 당시의 내겐 정말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난다는 게 아마 이런 의미리라. 드디어 자금 문제가 해소되었고, 나는 비로소 긴장이 풀려 주저앉은 채 엎드려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감사해서, 너무도 감사해서.
그 후 우리 회사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라이브 커머스를 시작했고,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만날 수 없는 초유의 비대면 시대에 맞게 온라인 쪽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이다. 전 직원이 셀러로 변신했다! 비록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노련한 쇼 호스트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제품을 직접 소개하고 열심히 판매하는 일이 고객님들의 눈에는 어여쁘게 비쳤는지 다소 어설픈 설명과 어리숙한 몸짓에도 소비자들은 응원과 함께 제품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내 주셨다. 고객분들의 그러한 응원과 격려는 우리가 현재까지도 자신감을 잃지 않고 라이브 판매를 꾸준히 잘 진행해나갈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만일 그때 그 정도의 큰 위기가 없었더라면 아마 난 계속 같은 자리에 안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든 눈앞에 닥친 고난을 이겨나가야만 했던 절박함으로 라이브 커머스라는 또 다른 판로를 개척할 수 있었고, 그것은 오늘날 내게 라이브 방송을 통한 직접적인 매출 상승 외에도 처음 사업을 시작하시는 분들을 위한 라이브 커머스 교육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시장을 열어준 계기가 되었다. 이 일은 지금도 한창 진행 중에 있으며, 내가 현재 가장 크게 보람을 느끼는 일이기도 하다. 절망이 가져다 준 다른 이름의 새 희망인 것이다.
돌아보면 참 힘든 나날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교훈이 너무나 크고 많았었기에 그때의 그 일들은 이제 내게 없어서는 안될 더없이 소중한 경험이자 자산이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돈이 없어 고생한 돈 문제가 오히려 돈보다 더한 가치로 남은 것이다. 또한 그동안은 잘 깨닫지 못했던 수많은 도움의 손길에 대해서도 뼈저리게 느낀 계기였다. 극도의 신경쇠약에 걸려 비명을 지르며 자다 깰 정도로 힘들어하던 나를 안아주며 토닥여주던 내 아내의 따뜻한 손길을 지금도 난 잊을 수 없고,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하기만 했던 좌절의 상황에서 마치 하늘에서 내려준 동앗줄 같았던 익산시 기술보증기금 담당자님의 그때 그 조언과 도움은 수없이 엎드려 절해도 모자랄 만큼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려웠던 그 시절을 함께 견디며 고생해 준 우리 직원분들과 모자라고 부족한 면에도 기꺼이 박수쳐 주시고 제품을 구매해 주셨던 한 분 한 분 소중한 우리 고객님들까지 함께 말이다.

그린로드는 비록 아직 작은 회사에 불과하지만, 내 회사가 이 자리까지 오는 데만도 수많은 이들의 이러한 어루만짐과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내 회사가 문을 닫는 그날까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모두 되갚고 보답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절망을 딛고 일어선 희망을 가슴에 새기면서.
- 이 글은 익산참여연대 소식지 참여와 자치 99호 청년이야기에 실린글입니다.
절망, 희망의 다른 이름
글 김지용 그린로드 대표
그날은 온 종일 돈 걱정으로 속을 끓이던 날이었다. 밥을 먹어도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질 않았고, 무얼 하고 있어도 정신이 딴 데 팔린 사람마냥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멍하게 기계적으로만 움직이고 있었다. 직원들의 월급날은 코앞으로 닥쳤는데 그때 내겐 돈이 한 푼도 없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그날 밤, 아내의 말에 의하면 내가 자다가 갑자기 숨이 넘어갈 듯한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 앉더라고 한다. 그 소리에 같이 잠이 깬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날 오래도록 안아 주었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내 등을 쓸어주고 토닥여주면서.
사업하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도 망하면 그냥 굶어 죽지 뭐, 하는 식으로 난 배짱이 있었고 자신감도 없지 않았었다. 그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다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최선을 다해도 되지 않는 일 역시 많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급속도로 위축되었고 참담함으로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늘 부모님의 보호와 조력 아래 또래 친구들에 비해서는 아쉬운 거 하나 없이 꽤 편하게 살아왔던 편이었던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돈 앞에서의 겸손함이 뭔지 처절히 깨달았다고나 할까.
2020년 3월, 사건의 발단은 코로나(COVID-19) 때문이었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한 지 수개월째에 접어들고 있을 때쯤, 갑작스레 거의 모든 판로가 막혔었고 그때부터 난 경영난을 겪기 시작했다. 상황은 나날이 심각해져 마침내 직원들의 월급이 밀리는 사태까지 간 것이다. 나 혼자였다면, 그냥 나 하나 망하고 죽는 거였다면 차라리 장렬히 끝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여러 명의 직원들을 두고 있었던 나는 그럴래야 그럴 수조차 없었다. 내가 뭘 잘못하거나 못나서 발생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할 모든 책임은 다 나에게 달려 있었으니까.
극한의 스트레스 속에서도 운영자금 해소를 위해 몸은 자동반사적으로 미친 듯이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하늘이 무심치 않으셨던지 마침내 기적이 일어났다! 그때 마침 익산시 기술보증기금 담당자님이 사무실을 방문하시게 되어 운영자금 관련한 조언을 해주셨던 것이다. 그분의 그 조언은 당시의 내겐 정말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난다는 게 아마 이런 의미리라. 드디어 자금 문제가 해소되었고, 나는 비로소 긴장이 풀려 주저앉은 채 엎드려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감사해서, 너무도 감사해서.
그 후 우리 회사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라이브 커머스를 시작했고,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만날 수 없는 초유의 비대면 시대에 맞게 온라인 쪽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이다. 전 직원이 셀러로 변신했다! 비록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노련한 쇼 호스트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제품을 직접 소개하고 열심히 판매하는 일이 고객님들의 눈에는 어여쁘게 비쳤는지 다소 어설픈 설명과 어리숙한 몸짓에도 소비자들은 응원과 함께 제품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내 주셨다. 고객분들의 그러한 응원과 격려는 우리가 현재까지도 자신감을 잃지 않고 라이브 판매를 꾸준히 잘 진행해나갈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만일 그때 그 정도의 큰 위기가 없었더라면 아마 난 계속 같은 자리에 안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든 눈앞에 닥친 고난을 이겨나가야만 했던 절박함으로 라이브 커머스라는 또 다른 판로를 개척할 수 있었고, 그것은 오늘날 내게 라이브 방송을 통한 직접적인 매출 상승 외에도 처음 사업을 시작하시는 분들을 위한 라이브 커머스 교육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시장을 열어준 계기가 되었다. 이 일은 지금도 한창 진행 중에 있으며, 내가 현재 가장 크게 보람을 느끼는 일이기도 하다. 절망이 가져다 준 다른 이름의 새 희망인 것이다.
돌아보면 참 힘든 나날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교훈이 너무나 크고 많았었기에 그때의 그 일들은 이제 내게 없어서는 안될 더없이 소중한 경험이자 자산이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돈이 없어 고생한 돈 문제가 오히려 돈보다 더한 가치로 남은 것이다. 또한 그동안은 잘 깨닫지 못했던 수많은 도움의 손길에 대해서도 뼈저리게 느낀 계기였다. 극도의 신경쇠약에 걸려 비명을 지르며 자다 깰 정도로 힘들어하던 나를 안아주며 토닥여주던 내 아내의 따뜻한 손길을 지금도 난 잊을 수 없고,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하기만 했던 좌절의 상황에서 마치 하늘에서 내려준 동앗줄 같았던 익산시 기술보증기금 담당자님의 그때 그 조언과 도움은 수없이 엎드려 절해도 모자랄 만큼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려웠던 그 시절을 함께 견디며 고생해 준 우리 직원분들과 모자라고 부족한 면에도 기꺼이 박수쳐 주시고 제품을 구매해 주셨던 한 분 한 분 소중한 우리 고객님들까지 함께 말이다.
그린로드는 비록 아직 작은 회사에 불과하지만, 내 회사가 이 자리까지 오는 데만도 수많은 이들의 이러한 어루만짐과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내 회사가 문을 닫는 그날까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모두 되갚고 보답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절망을 딛고 일어선 희망을 가슴에 새기면서.
- 이 글은 익산참여연대 소식지 참여와 자치 99호 청년이야기에 실린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