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과의 만남
박인택 회원
고향, 살아온 시간
저는 전북 김제 용지면 와룡리 ○○마을에서 4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58년생) 부모님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꿈 많던 젊은 시절에 원대한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했지만, 그렇게 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시골로 내려와 부모님과 함께 농사일하며, 지내던 중 함께 살던 고향 형님들과 함께 ○○공장 벌목일을 하러 영광 법성포로 가게 되었습니다.
결혼이야기
영광 법성포 마천이라는 산골로 나무 벌목을 하러 갔다가 일하는 인부들에게 밥해주시는 분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결혼 얘기가 오고 가던 중 그곳에서 밥해주시는 분 아버님을 만나 뵙고 한 가닥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어르신께는 8남매(4남 4녀)의 자녀분들이 계시는데 그중 셋째딸이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딸을 시골로 내려오게 하고 싶은데 내려오지 않고 있어서 고민이다.라고 하셔서, 서로 생각해낸 의견을 모아서 딸을 내려오게 하였습니다.
서울에서 갑자기 내려온 딸은 그렇게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내려와서 결혼하라는 얘기에 황당하다고 하면서 바로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엔 핸드폰도 없어서 버스터미널로 가서 표를 끊고 서울 올라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같은 버스를 타고 올라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 딸은 자기가 자취하고 있는 곳까지 함께 가고 있었습니다. 언니와 함께 자취생활하고 있던 그 딸은 언니의 성화에 못 이겨 함께 시골로 내려오게 된 그 딸은 벌목 작업하는 분들의 식사를 하게 해주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해 봄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하는일은
결혼하면서 나무 벌목하는 일을 그만두고 현장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광양제철소, 영광 원자력 발전소, 그리고 어디든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면 가리지 않고 다 했습니다.


나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세 가지 키워드
하나. 비가 오면 마당과 창틀을 닦습니다. 둘 성당 미사를 빠지지 않고 다니고 있으며, 손주들이 내려오면 손주들과 함께 공놀이하면서 신나게 놀아줍니다. 셋. 시간이 나면 항상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계속 아픈 아내를 챙기며)
뭐하면서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시고,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요
일을 가지 않고, 집에 있을 때는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고, 아내와 함께 여행도 다니고, 헬스장도 다니고 있습니다. 저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손주들이 내려와서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와 놀아주는 것입니다.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은
지금 제가 청력이 안 좋은데 아이들과 함께 얘기를 많이 하고 싶습니다. 가족들에게는 항상 건강하시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늘 건강하고 씩씩하게 가정을 위해 헌신해준 아내가 갑작스럽게 쓰러지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게 많지만, 늘 부족한 것만 같네요.

다시 20살 청년으로 돌아간다면 바꾸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한 번도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저는 지금처럼 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바꾸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보탬 : 박인택 회원은 아내만 생각하는 순정파. 20년 전 김순옥 언니가 처음 단체에 가입하고 활동하실 시기에도 형부는 지금처럼 한결같이 아내만 생각했습니다. 지금 크게 변화된 부분은 더 적극적으로 챙기신다는 거죠. 그래서 저희와도 요즘 자주 얼굴을 본답니다. 최근에 생맥주 한잔 나눌 때 밝고 환한 기운을 보내주셨지요. 두 분 모두 정을 나누고, 사람을 생각하는 귀한 마음이 닮았습니다. 얼굴도 안 본다는 셋째딸을 쟁취했던 적극적인 형부의 청년 시절의 모습이 믿음직스럽고 든든했을 것 같습니다. 오래 오래 서로를 사랑하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이 글은 익산참여연대 참여와자치 110호 소식지 회원과의 만남에 실렸습니다.
회원과의 만남
박인택 회원
고향, 살아온 시간
저는 전북 김제 용지면 와룡리 ○○마을에서 4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58년생) 부모님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꿈 많던 젊은 시절에 원대한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했지만, 그렇게 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시골로 내려와 부모님과 함께 농사일하며, 지내던 중 함께 살던 고향 형님들과 함께 ○○공장 벌목일을 하러 영광 법성포로 가게 되었습니다.
결혼이야기
영광 법성포 마천이라는 산골로 나무 벌목을 하러 갔다가 일하는 인부들에게 밥해주시는 분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결혼 얘기가 오고 가던 중 그곳에서 밥해주시는 분 아버님을 만나 뵙고 한 가닥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어르신께는 8남매(4남 4녀)의 자녀분들이 계시는데 그중 셋째딸이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딸을 시골로 내려오게 하고 싶은데 내려오지 않고 있어서 고민이다.라고 하셔서, 서로 생각해낸 의견을 모아서 딸을 내려오게 하였습니다.
서울에서 갑자기 내려온 딸은 그렇게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내려와서 결혼하라는 얘기에 황당하다고 하면서 바로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엔 핸드폰도 없어서 버스터미널로 가서 표를 끊고 서울 올라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같은 버스를 타고 올라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 딸은 자기가 자취하고 있는 곳까지 함께 가고 있었습니다. 언니와 함께 자취생활하고 있던 그 딸은 언니의 성화에 못 이겨 함께 시골로 내려오게 된 그 딸은 벌목 작업하는 분들의 식사를 하게 해주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해 봄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하는일은
결혼하면서 나무 벌목하는 일을 그만두고 현장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광양제철소, 영광 원자력 발전소, 그리고 어디든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면 가리지 않고 다 했습니다.
나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세 가지 키워드
하나. 비가 오면 마당과 창틀을 닦습니다. 둘 성당 미사를 빠지지 않고 다니고 있으며, 손주들이 내려오면 손주들과 함께 공놀이하면서 신나게 놀아줍니다. 셋. 시간이 나면 항상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계속 아픈 아내를 챙기며)
뭐하면서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시고,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요
일을 가지 않고, 집에 있을 때는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고, 아내와 함께 여행도 다니고, 헬스장도 다니고 있습니다. 저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손주들이 내려와서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와 놀아주는 것입니다.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은
지금 제가 청력이 안 좋은데 아이들과 함께 얘기를 많이 하고 싶습니다. 가족들에게는 항상 건강하시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늘 건강하고 씩씩하게 가정을 위해 헌신해준 아내가 갑작스럽게 쓰러지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게 많지만, 늘 부족한 것만 같네요.
다시 20살 청년으로 돌아간다면 바꾸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한 번도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저는 지금처럼 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바꾸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보탬 : 박인택 회원은 아내만 생각하는 순정파. 20년 전 김순옥 언니가 처음 단체에 가입하고 활동하실 시기에도 형부는 지금처럼 한결같이 아내만 생각했습니다. 지금 크게 변화된 부분은 더 적극적으로 챙기신다는 거죠. 그래서 저희와도 요즘 자주 얼굴을 본답니다. 최근에 생맥주 한잔 나눌 때 밝고 환한 기운을 보내주셨지요. 두 분 모두 정을 나누고, 사람을 생각하는 귀한 마음이 닮았습니다. 얼굴도 안 본다는 셋째딸을 쟁취했던 적극적인 형부의 청년 시절의 모습이 믿음직스럽고 든든했을 것 같습니다. 오래 오래 서로를 사랑하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이 글은 익산참여연대 참여와자치 110호 소식지 회원과의 만남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