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회원을 소개합니다
자기 소개
제 고향은 만경강 넘어 철도를 따라가다 보면 부용역에서 왼쪽으로 보면 용지이고요. 2남 2녀 중 둘째입니다. 제 취미는 산에 막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시간만 되면 개념 없이 걸어 다니기를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음식은 특별히 없고, 아무거나 배고프면 먹습니다. 일할 때도 밖에 음식은 잘 안 먹는 편입니다. 저는 군대 다녀와서 25살에 결혼을 했고, 33살과 31살 딸 둘이 있습니다. 집사람과 맞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제 직업은
형을 따라다니며 일을 배우다가 92년도부터 대형차를 운전하게 됐습니다. 중간에 버스 운전도 좀 했었고, 몇 년 전 기계 유통 개인 사업도 했었지만, 현재는 대형 화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운전은 수출입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일입니다. 회사의 배차를 받아서 옮겨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집사람은 운전을 그만했으면 하지만 저는 복잡한 거를 싫어하는 성격이라 혼자 앉아서 운행하는 이게 편하더라고요.
학창 시절(원광고 재학)
김제 부용역에서 익산역까지 기차를 타고 와서 학교까지 1시간 20분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촌놈이 시내에 오니 놀 것도 많더군요. 당구장, 탁구장, 만화방도 있었는데, 만화방 사장님을 깨워 하루에 한 권씩 보고 학교에 갔었습니다. 2학년 여름이 안 됐을 무렵 책방(대한서림)에 자주 가게 되면서 학교 공부는 별로 재미가 없었고, 3학년 때까지 사회과학책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원대에 가서 애들하고 같이 공부도 했었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하진 않았고, 저는 노조 현장으로 자연스럽게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조 활동 당시
2006년도가 기억이 납니다. 협상 대표를 하면서 운반비도 올렸죠. 전주 삼양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회사 측에서 배차 관련해서 저를 괴롭혔고, 함께 일했던 사람이 20명이었는데 나서주는 사람이 하나 없었습니다. 쉬는 날 없이 일을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2000년도에도 그랬고, 93년도 처음 시작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세 번 정도 큰 상처를 받고 나서는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열정도 사라졌습니다.
나는 개념 없는 자연인이다!
제 생활하면서 하고 싶은 약간의 그런 욕망일지도 모르겠네요. 개념 없는 자연인이 되고 싶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기계 유통(스케일 부스터) 사업을 했었죠. 제품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카르텔이 너무 심하고, 자본력이 뒷받침이 안 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제 취미가 시간만 되면 산에 막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했었죠. 빨리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했었던 일이기도 했습니다.
벌과 기쁨
2000년도 30대에 마당에서 양봉하는 것을 보고,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계속 배우게 되었습니다. 양봉하다가 벌이 죽고 그래서 지금은 하지 않고, 후배들이 하면 도와주고 있습니다. 환경 측면으로 곤충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그럽니다. 벌을 알고 나서 제 삶에 기쁨이 많았습니다.

손으로 할 수 있는 골
제 생활은 단순하고 평범합니다. 손으로 하는 운동을 좋아해서 탁구도 15년 가까이 했는데요.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다 보니까 골프를 배웠습니다. 집사람하고도 원래 산에서 만났기 때문에 취미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여름 같은 때는 실내 스크린에 가서 서너 시간 운동 겸하고, 배우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갔었는데, 지금은 그것마저도 어렵습니다.
행복을 기준으로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지질학자입니다. 바닷가나 섬을 다니면서 바위 등을 관찰하는 그런 것을 했으면 잘 맞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눈썰미는 좋습니다.
갑자기 나에게 휴가가 주어진다면
제가 산을 많이 가봤는데, 아직 백두산을 한 번도 못 갔어요. 최근에도 기회가 생겼는데 일주일 가까이 쉬어야 하는 상황이 돼서 그런 부담 때문에 못 갔습니다. 다른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는데 백두산은 꼭 가보고 싶습니다.

후회도 있었나요?
빨리 산으로 가야지라는 생각과 욕심 때문에 여러 사업을 하지 않고(두 번 정도 실패를 하게 된 원인), 그냥 원래 가던 길을 가면서 서서히 준비했다면 더 빠르게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듭니다. 큰딸이 공무원을 2년하고 난 뒤 지금은 새로운 일을 하고 있는데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다 보면 분명히 자기가 목표가 있으니까 잘 살아낼 것이다. 믿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금 마당이 있는 집을 고치고 있습니다
집사람 동의하에 두 달 전에 아파트 가까운 동네에 시골집을 하나 얻었습니다. 지금 리모델링을 하는 중입니다. 저는 촌놈이라 촌이 더 편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참여연대는
사람마다 순수한 마음이 있고, 지역을 생각하는 마음이 모여서 단체를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제가 적극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되기도 하지만, 창립 25년째 지금까지 변함없이 시민 곁에서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쁘게 생각하고 뿌듯합니다. 특별히 바라는 것보다는 이대로만 유지를 해서 가도 충분히 사람들한테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래전부터 왜 사진만 찍으면 먼 산을 그렇게 바라보시는지 몰랐다. 누구보다도 평범하면서 진지하고, 생각이 많고, 늘 힘이 되려고 했던 모습이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24.6.23 |
* 인터뷰어 : 김순옥, 김광심, 류귀윤 편집위원
박정호 회원을 소개합니다
자기 소개
제 고향은 만경강 넘어 철도를 따라가다 보면 부용역에서 왼쪽으로 보면 용지이고요. 2남 2녀 중 둘째입니다. 제 취미는 산에 막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시간만 되면 개념 없이 걸어 다니기를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음식은 특별히 없고, 아무거나 배고프면 먹습니다. 일할 때도 밖에 음식은 잘 안 먹는 편입니다. 저는 군대 다녀와서 25살에 결혼을 했고, 33살과 31살 딸 둘이 있습니다. 집사람과 맞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제 직업은
형을 따라다니며 일을 배우다가 92년도부터 대형차를 운전하게 됐습니다. 중간에 버스 운전도 좀 했었고, 몇 년 전 기계 유통 개인 사업도 했었지만, 현재는 대형 화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운전은 수출입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일입니다. 회사의 배차를 받아서 옮겨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집사람은 운전을 그만했으면 하지만 저는 복잡한 거를 싫어하는 성격이라 혼자 앉아서 운행하는 이게 편하더라고요.
학창 시절(원광고 재학)
김제 부용역에서 익산역까지 기차를 타고 와서 학교까지 1시간 20분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촌놈이 시내에 오니 놀 것도 많더군요. 당구장, 탁구장, 만화방도 있었는데, 만화방 사장님을 깨워 하루에 한 권씩 보고 학교에 갔었습니다. 2학년 여름이 안 됐을 무렵 책방(대한서림)에 자주 가게 되면서 학교 공부는 별로 재미가 없었고, 3학년 때까지 사회과학책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원대에 가서 애들하고 같이 공부도 했었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하진 않았고, 저는 노조 현장으로 자연스럽게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조 활동 당시
2006년도가 기억이 납니다. 협상 대표를 하면서 운반비도 올렸죠. 전주 삼양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회사 측에서 배차 관련해서 저를 괴롭혔고, 함께 일했던 사람이 20명이었는데 나서주는 사람이 하나 없었습니다. 쉬는 날 없이 일을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2000년도에도 그랬고, 93년도 처음 시작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세 번 정도 큰 상처를 받고 나서는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열정도 사라졌습니다.
나는 개념 없는 자연인이다!
제 생활하면서 하고 싶은 약간의 그런 욕망일지도 모르겠네요. 개념 없는 자연인이 되고 싶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기계 유통(스케일 부스터) 사업을 했었죠. 제품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카르텔이 너무 심하고, 자본력이 뒷받침이 안 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제 취미가 시간만 되면 산에 막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했었죠. 빨리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했었던 일이기도 했습니다.
벌과 기쁨
2000년도 30대에 마당에서 양봉하는 것을 보고,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계속 배우게 되었습니다. 양봉하다가 벌이 죽고 그래서 지금은 하지 않고, 후배들이 하면 도와주고 있습니다. 환경 측면으로 곤충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그럽니다. 벌을 알고 나서 제 삶에 기쁨이 많았습니다.
손으로 할 수 있는 골
제 생활은 단순하고 평범합니다. 손으로 하는 운동을 좋아해서 탁구도 15년 가까이 했는데요.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다 보니까 골프를 배웠습니다. 집사람하고도 원래 산에서 만났기 때문에 취미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여름 같은 때는 실내 스크린에 가서 서너 시간 운동 겸하고, 배우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갔었는데, 지금은 그것마저도 어렵습니다.
행복을 기준으로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지질학자입니다. 바닷가나 섬을 다니면서 바위 등을 관찰하는 그런 것을 했으면 잘 맞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눈썰미는 좋습니다.
갑자기 나에게 휴가가 주어진다면
제가 산을 많이 가봤는데, 아직 백두산을 한 번도 못 갔어요. 최근에도 기회가 생겼는데 일주일 가까이 쉬어야 하는 상황이 돼서 그런 부담 때문에 못 갔습니다. 다른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는데 백두산은 꼭 가보고 싶습니다.
후회도 있었나요?
빨리 산으로 가야지라는 생각과 욕심 때문에 여러 사업을 하지 않고(두 번 정도 실패를 하게 된 원인), 그냥 원래 가던 길을 가면서 서서히 준비했다면 더 빠르게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듭니다. 큰딸이 공무원을 2년하고 난 뒤 지금은 새로운 일을 하고 있는데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다 보면 분명히 자기가 목표가 있으니까 잘 살아낼 것이다. 믿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금 마당이 있는 집을 고치고 있습니다
집사람 동의하에 두 달 전에 아파트 가까운 동네에 시골집을 하나 얻었습니다. 지금 리모델링을 하는 중입니다. 저는 촌놈이라 촌이 더 편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참여연대는
사람마다 순수한 마음이 있고, 지역을 생각하는 마음이 모여서 단체를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제가 적극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되기도 하지만, 창립 25년째 지금까지 변함없이 시민 곁에서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쁘게 생각하고 뿌듯합니다. 특별히 바라는 것보다는 이대로만 유지를 해서 가도 충분히 사람들한테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래전부터 왜 사진만 찍으면 먼 산을 그렇게 바라보시는지 몰랐다. 누구보다도 평범하면서 진지하고, 생각이 많고, 늘 힘이 되려고 했던 모습이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24.6.23
* 인터뷰어 : 김순옥, 김광심, 류귀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