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미지 출처 : 스포츠서울 -
함께 걸으실래요?
글 익산참여연대 운영위원, 전주기전대학 교수 김홍균
익산참여자치연대의 소식지에 글을 올리기 위해 펜을 들고 책상에 앉았다.
소재도 주제도 어떠한 형식도 없는 글, 세상에서 가장 쓰기 힘든 글인 것 같다.
그래서 난 어떤 글을 쓸까?
전공과 관련하여? 내가 사는 지역에 연관된? 아니면 현시대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비판? 많은 생각이 지나가지만, 그것들은 그저 지금까지 배우고 공부했던 지식 또는 전문서적에서 봄 직한, 항상 이야기하는 것들의 나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오늘은 일상에 관한, 일기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만남 그리고 인연에 대하여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이 와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피천득의 ‘인연’에서>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는 법칙이 있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이자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의 이름에서 명명된 것으로, 아무리 친화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진정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 인원의 정도를 주장한 법칙이다.
이 학자는 인간이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친구의 수를 절친 5명, 친한 친구 15명, 좋은 친구 50명, 그냥 친구는 150명으로 친구 이상의 관계는 그냥 알던 사이라고 이야기한다.
내 핸드폰을 꺼냈다. 연락처에 저장된 숫자 2,000여 명, 그 중 스스럼없이 연락하여 세상 사는 얘기, 푸념 등을 늘어놓고 편하게 대화 나눌 수 있는 나의 인연은 얼마나 될까?
세상을 산 지 50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 나는 어떠한 인연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오고 있었을까? 그 수를 헤아려보면 얼마나 될까? 한번 되뇌어 보게 된다.
부모님과 만남, 학창 시절 친구들, 사회에서 만난 동료들........
어려서의 인연은 무조건적인 사랑 받기였고 그 후 만나는 인연들은 이해관계에 의한 만남이었던 것 같은데 그 안에서 내가 스스럼없이 친구야! 라고 부르며 찾아갈 수 있는 인연은 정말 손에 꼽게 된다.
‘돌이켜 보면 난 세상을 어떻게 살아온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건 나만의 자조적인 느낌인 건가?’라고 느껴가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 어느 날에 이재명 대표가(성남시장 하던 시절) 익산에서 토크쇼를 한 적이 있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익산참여자치연대를 직접적으로 만난 건...
당시 내가 좋아하던 선배님의 강건한 권유로 회원이 되었고 작게나마 활동(?)을 시작했다.
그 속에서 많은 인연을 만났고 많은 대화를 나눴고 토론하면서 양질의 시민 삶을 찾아주려고 노력하는 우리 인연들과 지낸 시간이 따뜻했고 즐거웠다.
모든 시람을 나의 인연으로 만들 순 없다. 익산시민을 전부 인연으로 만들 순 없지만, 익산참여연대와 함께한다면 인연이 되어주십사하는 노력도 가능할 것 같은 생각을 하던 시기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흐려지고 약해졌지만 말이다.
그 속에서 내가 많은 것을 하고, 많은 참여를 할 수는 없었지만 참 뿌듯했던 것 같다.
여러모로 주변의 상황과 시민과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인연들을 보면 왠지 나도 그리 정의로워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여하튼 여러 해가 지났고 이젠 참여연대라는 인연이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처음에 가졌던 그런 생각과 행동은 이젠 많이 무뎌졌지만, 이제는 그저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나의 가슴 속에...
앞으로 많은 시간이 흘러 인연들의 정리가 필요해지는 시기가 되더라도 나는 익산참여연대라는 인연의 끈이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두서없는 글에 결론 또한 없다.
그래도 글을 마치며 한마디 하고자 한다.
‘빠르게 가려면 혼자 가고, 오래도록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 나는 우리 익산참여연대의 많은 회원과 오래도록 멀리 가보고 싶다. 앞서 이야기했던 던바의 법칙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우리 함께 걸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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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걸으실래요?
글 익산참여연대 운영위원, 전주기전대학 교수 김홍균
익산참여자치연대의 소식지에 글을 올리기 위해 펜을 들고 책상에 앉았다.
소재도 주제도 어떠한 형식도 없는 글, 세상에서 가장 쓰기 힘든 글인 것 같다.
그래서 난 어떤 글을 쓸까?
전공과 관련하여? 내가 사는 지역에 연관된? 아니면 현시대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비판? 많은 생각이 지나가지만, 그것들은 그저 지금까지 배우고 공부했던 지식 또는 전문서적에서 봄 직한, 항상 이야기하는 것들의 나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오늘은 일상에 관한, 일기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만남 그리고 인연에 대하여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이 와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피천득의 ‘인연’에서>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는 법칙이 있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이자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의 이름에서 명명된 것으로, 아무리 친화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진정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 인원의 정도를 주장한 법칙이다.
이 학자는 인간이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친구의 수를 절친 5명, 친한 친구 15명, 좋은 친구 50명, 그냥 친구는 150명으로 친구 이상의 관계는 그냥 알던 사이라고 이야기한다.
내 핸드폰을 꺼냈다. 연락처에 저장된 숫자 2,000여 명, 그 중 스스럼없이 연락하여 세상 사는 얘기, 푸념 등을 늘어놓고 편하게 대화 나눌 수 있는 나의 인연은 얼마나 될까?
세상을 산 지 50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 나는 어떠한 인연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오고 있었을까? 그 수를 헤아려보면 얼마나 될까? 한번 되뇌어 보게 된다.
부모님과 만남, 학창 시절 친구들, 사회에서 만난 동료들........
어려서의 인연은 무조건적인 사랑 받기였고 그 후 만나는 인연들은 이해관계에 의한 만남이었던 것 같은데 그 안에서 내가 스스럼없이 친구야! 라고 부르며 찾아갈 수 있는 인연은 정말 손에 꼽게 된다.
‘돌이켜 보면 난 세상을 어떻게 살아온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건 나만의 자조적인 느낌인 건가?’라고 느껴가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 어느 날에 이재명 대표가(성남시장 하던 시절) 익산에서 토크쇼를 한 적이 있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익산참여자치연대를 직접적으로 만난 건...
당시 내가 좋아하던 선배님의 강건한 권유로 회원이 되었고 작게나마 활동(?)을 시작했다.
그 속에서 많은 인연을 만났고 많은 대화를 나눴고 토론하면서 양질의 시민 삶을 찾아주려고 노력하는 우리 인연들과 지낸 시간이 따뜻했고 즐거웠다.
모든 시람을 나의 인연으로 만들 순 없다. 익산시민을 전부 인연으로 만들 순 없지만, 익산참여연대와 함께한다면 인연이 되어주십사하는 노력도 가능할 것 같은 생각을 하던 시기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흐려지고 약해졌지만 말이다.
그 속에서 내가 많은 것을 하고, 많은 참여를 할 수는 없었지만 참 뿌듯했던 것 같다.
여러모로 주변의 상황과 시민과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인연들을 보면 왠지 나도 그리 정의로워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여하튼 여러 해가 지났고 이젠 참여연대라는 인연이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처음에 가졌던 그런 생각과 행동은 이젠 많이 무뎌졌지만, 이제는 그저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나의 가슴 속에...
앞으로 많은 시간이 흘러 인연들의 정리가 필요해지는 시기가 되더라도 나는 익산참여연대라는 인연의 끈이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두서없는 글에 결론 또한 없다.
그래도 글을 마치며 한마디 하고자 한다.
‘빠르게 가려면 혼자 가고, 오래도록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 나는 우리 익산참여연대의 많은 회원과 오래도록 멀리 가보고 싶다. 앞서 이야기했던 던바의 법칙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우리 함께 걸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