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가오는 노년이 쓸쓸하지 않기를 바라며
김양균 회원
예전에 읽었던 플라톤의 『국가』라는 책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부유한 노인인 케팔로스와 소크라테스의 대화로 시작이 됩니다. 이들은 노년기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케팔로스는 나이가 들어 서운한 점, 그리고 나이가 들어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됩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노년기의 삶에 부유함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질문하게 되는데, 케팔로스는 “좋은 사람도 가난하면 노년을 힘들게 살겠지만, 나쁜 사람이 부유하다고 해서 만족스러운 삶은 사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재산이 많으면 재물을 위해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신에게 제물 바치지 못하는 일이 없으며, 타인에게 빚진 채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부유함이 노년 생활에 미치는 긍정적인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물론 오래전에 읽었던 내용이고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와 닿지가 않았는데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된 지금에는 제법 의미 있는 이야기로 느껴지곤 합니다.
저는 1974년생 남성입니다. 의도치 않게 삶에 굴곡이 적지 않았던 터라 직업이 몇 번 바뀌기는 했는데, 현재는 익산공단에 있는 화학공장의 하청업체에서 생산직 직원으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청춘이 영원할 줄 알고 겸손하지 못한 행동을 하며, 깝치고 다니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것이 시간이고 세월인지라 저 역시 어느새 중년기의 인생을 사는 나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1990년~2000년 초반만 해도 나이 50이 넘으신 분들은 어디든 가면 제법 어른 대우를 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정도의 나이는 어른이 아닌 젊은 층으로 분류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각종 모임에 나가봐도 저와 비슷한 연령층의 경우 젊은 나이이거나 막내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사회가 고령화되었고, 어른이 어른 대우를 못 받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을 몸소 체감하게 됩니다.
현재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요즘 저의 삶의 가장 문제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 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비록 공장 일이 힘들고 고되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던 간에 한 달만 버티면 무한리필 꽃게장 마냥 통장을 채워주는 월급도 이제 받을 일이 100번 정도 밖에 남지 않았고, 얼마 되지도 않는 자산으로 버티기에는 살아가야 할 날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보다 현실적인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는데 첫째로는 조금이나마 노후의 삶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자산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정기적금에도 가입했고, 연금보험에도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금액이 많지는 않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으나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을 듯 싶습니다.
둘째로는 오래 오래 일하는 것입니다. 신체가 건강하고 필요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면 저 같은 사람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적정한 건강관리와 더불어 필요한 자격을 얻고자 하는 중인데 이것 역시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날 이런 고민은 비단 저 한사람만의 고민이 아닌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계신 여러 사람들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기에 어느 정도의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상하게도 정치를 하시는 분들은 청년, 중년, 노인 등으로 세대를 구분하시어 정책을 만드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청년에 대한 지원은 노인에 대한 소외로 비춰지고, 노인에 대한 복지정책이 청년을 비롯한 다른 세대들에 대한 역차별로 비춰져서 오히려 세대 간 대결구도를 형성하는 좋지 못한 결과(정치공학적으로는 유리할지 모르겠으나)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사회 안에서 세대를 결코 분리 하는 정책이 있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인간의 보편적인 성장과 생애주기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로 이해되어서 지속가능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정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고민해 주셔야 할 듯 싶습니다.
다시 저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던 젊은 시절에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싸우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다르게 오늘날 제가 사회적 약자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 제가 우리 사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타인과 사회에 부담을 지우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노년의 삶에 미리 충실하게 대비하고 준비하고자 합니다.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세월이라는 것이 조만간 닥쳐 오겠지만 오늘의 준비를 통해 그 시절이 너무 힘들지도 괴롭지도 않는 시절이 되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 이글은 익산참여연대 소식지 참여와자치 105호에 실렸습니다.
다가오는 노년이 쓸쓸하지 않기를 바라며
김양균 회원
예전에 읽었던 플라톤의 『국가』라는 책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부유한 노인인 케팔로스와 소크라테스의 대화로 시작이 됩니다. 이들은 노년기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케팔로스는 나이가 들어 서운한 점, 그리고 나이가 들어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됩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노년기의 삶에 부유함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질문하게 되는데, 케팔로스는 “좋은 사람도 가난하면 노년을 힘들게 살겠지만, 나쁜 사람이 부유하다고 해서 만족스러운 삶은 사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재산이 많으면 재물을 위해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신에게 제물 바치지 못하는 일이 없으며, 타인에게 빚진 채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부유함이 노년 생활에 미치는 긍정적인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물론 오래전에 읽었던 내용이고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와 닿지가 않았는데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된 지금에는 제법 의미 있는 이야기로 느껴지곤 합니다.
저는 1974년생 남성입니다. 의도치 않게 삶에 굴곡이 적지 않았던 터라 직업이 몇 번 바뀌기는 했는데, 현재는 익산공단에 있는 화학공장의 하청업체에서 생산직 직원으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청춘이 영원할 줄 알고 겸손하지 못한 행동을 하며, 깝치고 다니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것이 시간이고 세월인지라 저 역시 어느새 중년기의 인생을 사는 나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1990년~2000년 초반만 해도 나이 50이 넘으신 분들은 어디든 가면 제법 어른 대우를 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정도의 나이는 어른이 아닌 젊은 층으로 분류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각종 모임에 나가봐도 저와 비슷한 연령층의 경우 젊은 나이이거나 막내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사회가 고령화되었고, 어른이 어른 대우를 못 받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을 몸소 체감하게 됩니다.
현재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요즘 저의 삶의 가장 문제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 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비록 공장 일이 힘들고 고되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던 간에 한 달만 버티면 무한리필 꽃게장 마냥 통장을 채워주는 월급도 이제 받을 일이 100번 정도 밖에 남지 않았고, 얼마 되지도 않는 자산으로 버티기에는 살아가야 할 날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보다 현실적인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는데 첫째로는 조금이나마 노후의 삶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자산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정기적금에도 가입했고, 연금보험에도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금액이 많지는 않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으나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을 듯 싶습니다.
둘째로는 오래 오래 일하는 것입니다. 신체가 건강하고 필요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면 저 같은 사람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적정한 건강관리와 더불어 필요한 자격을 얻고자 하는 중인데 이것 역시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날 이런 고민은 비단 저 한사람만의 고민이 아닌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계신 여러 사람들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기에 어느 정도의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상하게도 정치를 하시는 분들은 청년, 중년, 노인 등으로 세대를 구분하시어 정책을 만드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청년에 대한 지원은 노인에 대한 소외로 비춰지고, 노인에 대한 복지정책이 청년을 비롯한 다른 세대들에 대한 역차별로 비춰져서 오히려 세대 간 대결구도를 형성하는 좋지 못한 결과(정치공학적으로는 유리할지 모르겠으나)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사회 안에서 세대를 결코 분리 하는 정책이 있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인간의 보편적인 성장과 생애주기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로 이해되어서 지속가능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정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고민해 주셔야 할 듯 싶습니다.
다시 저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던 젊은 시절에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싸우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다르게 오늘날 제가 사회적 약자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 제가 우리 사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타인과 사회에 부담을 지우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노년의 삶에 미리 충실하게 대비하고 준비하고자 합니다.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세월이라는 것이 조만간 닥쳐 오겠지만 오늘의 준비를 통해 그 시절이 너무 힘들지도 괴롭지도 않는 시절이 되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 이글은 익산참여연대 소식지 참여와자치 105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