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익산 홍보맨

글 권정일 회원
저는 1984년도에 면허를 취득해서 1989년부터 택시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직업이라기보다는 먹고 살기 위한 직장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택시기사로 취업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9개월 동안이나 야간에만 하는 (구급)기사를 하다가 정식 기사가 되었지요. 개인택시는 2008년도에 취득했습니다.
10년 전쯤 손님을 모시고 전주에 가고 있는데 “뒷좌석에서 쓰러지면서 나 죽겄네” 하는 것이었습니다. 비상등을 켜고 전북대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응급처치를 하고 몇 달을 치료받고 완쾌되셨는데, 뇌경색으로 조금만 늦었어도 회복이 어려웠을거라고 합니다. 그 분께서 전화를 하시며 정말 고마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잊을 수 없는 보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익산역은 많은 손님들이 오고가는 익산의 관문입니다. 저는 대부분 익산역 환승장에서 기다리며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 쉬는 시간엔 환승장 주변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곤 하는데요. 버려진 담배꽁초, 커피먹고 버린 컵, 불법 쓰레기까지 그 양도 제법 많습니다. 하루면 100ℓ 1개, 휴일이끼면 2개씩 버려야 합니다. 그동안은 도로청소가 잘 되었지만, 10년 전부터는 하지 않아 너무나 지저분해 스스로 하고 있습니다. 쓰레기봉투는 택시 조합에 이야기해서 시청에서 지급을 받습니다. 최근 두달간 지원이 없어 개인 돈으로 사다가 사용했습니다. 시가 적극적으로 청소를 한다면 문제가 없을테지만, 이렇게 청소를 도맡아 하고 있는 상황을 잘 인지해서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손님에게 백제 30대 무왕인 서동왕자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는데요. “금마에 있는 연못가에서 어머니가 용을 품은 꿈을 꾸고 나서 서동 왕자가 태어낳고, 자라면서 사는게 어려워 어머니와 마장사를 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경주에 사는 선화공주가 예쁘다고 소문이 나서 마를 가지고 경주에 가서, 시장에서 아이들에게 마를 주며 서동왕자와 선화공주가 바람이 났다고 소문을 내서 궁궐에서 쫓겨난 선화공주가 서동왕자와 같이 금마에 와서 살면서 30대 무왕까지 지냈던 역사까지, 그래서 서동마가 유명해져 익산에서 마약밥이 유명해졌다고요. 미륵사지에서 나온 사리장엄 이야기, 왕궁 박물관 이야기, 보석의 도시였던 익산에 대한 이야기, 보석박물관이 왜 익산에 있는가에 대하여, 성당포구에 바람개비 마을 깡통마차를 타고 여행할 수 있는 이야기까지, 이장님의 자세한 해설까지 만족하실겁니다.” 라고 이렇게 익산에 대한 홍보를 했습니다. 얼마전에는 익산시와 함께한 KBS 생생정보통 촬영때에도 황등시장 비빔밥, 교도소 세트장, 성당포구 등을 알리는데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였습니다.
저는 익산을 사랑하며 관광객을 사랑하는 “나는야 익산 홍보맨 권정일”입니다. 한 사람의 홍보가 몇 분을 모시고 익산에 오실 줄은 모릅니다. 언제나 나의 가족같이 대하면서 편안하게 구경하면 마음속 깊게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저를 필요로하고, 익산을 알려나가는 일이라면 두손두발 걷어 붙이고 나설것입니다.

저는 시간을 만들어서 여행을 잘하는 편인데요. 꽃과 풍경 사진을 찍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좋은 기억과 아름다운 것들을 나 혼자 느끼는 것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타지역도 소개를 하는 편입니다. 제 SNS 공간에 오시면 보다 많은 정보를 얻어 가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일상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의 후배들, 가족들, 익산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나 보다는 너”, “너 보다는 우리” 함께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이 글은 익산참여연대 소식지 참여와자치 99호에 실렸습니다.
나는야 익산 홍보맨
글 권정일 회원
저는 1984년도에 면허를 취득해서 1989년부터 택시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직업이라기보다는 먹고 살기 위한 직장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택시기사로 취업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9개월 동안이나 야간에만 하는 (구급)기사를 하다가 정식 기사가 되었지요. 개인택시는 2008년도에 취득했습니다.
10년 전쯤 손님을 모시고 전주에 가고 있는데 “뒷좌석에서 쓰러지면서 나 죽겄네” 하는 것이었습니다. 비상등을 켜고 전북대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응급처치를 하고 몇 달을 치료받고 완쾌되셨는데, 뇌경색으로 조금만 늦었어도 회복이 어려웠을거라고 합니다. 그 분께서 전화를 하시며 정말 고마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잊을 수 없는 보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익산역은 많은 손님들이 오고가는 익산의 관문입니다. 저는 대부분 익산역 환승장에서 기다리며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 쉬는 시간엔 환승장 주변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곤 하는데요. 버려진 담배꽁초, 커피먹고 버린 컵, 불법 쓰레기까지 그 양도 제법 많습니다. 하루면 100ℓ 1개, 휴일이끼면 2개씩 버려야 합니다. 그동안은 도로청소가 잘 되었지만, 10년 전부터는 하지 않아 너무나 지저분해 스스로 하고 있습니다. 쓰레기봉투는 택시 조합에 이야기해서 시청에서 지급을 받습니다. 최근 두달간 지원이 없어 개인 돈으로 사다가 사용했습니다. 시가 적극적으로 청소를 한다면 문제가 없을테지만, 이렇게 청소를 도맡아 하고 있는 상황을 잘 인지해서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손님에게 백제 30대 무왕인 서동왕자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는데요. “금마에 있는 연못가에서 어머니가 용을 품은 꿈을 꾸고 나서 서동 왕자가 태어낳고, 자라면서 사는게 어려워 어머니와 마장사를 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경주에 사는 선화공주가 예쁘다고 소문이 나서 마를 가지고 경주에 가서, 시장에서 아이들에게 마를 주며 서동왕자와 선화공주가 바람이 났다고 소문을 내서 궁궐에서 쫓겨난 선화공주가 서동왕자와 같이 금마에 와서 살면서 30대 무왕까지 지냈던 역사까지, 그래서 서동마가 유명해져 익산에서 마약밥이 유명해졌다고요. 미륵사지에서 나온 사리장엄 이야기, 왕궁 박물관 이야기, 보석의 도시였던 익산에 대한 이야기, 보석박물관이 왜 익산에 있는가에 대하여, 성당포구에 바람개비 마을 깡통마차를 타고 여행할 수 있는 이야기까지, 이장님의 자세한 해설까지 만족하실겁니다.” 라고 이렇게 익산에 대한 홍보를 했습니다. 얼마전에는 익산시와 함께한 KBS 생생정보통 촬영때에도 황등시장 비빔밥, 교도소 세트장, 성당포구 등을 알리는데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였습니다.
저는 익산을 사랑하며 관광객을 사랑하는 “나는야 익산 홍보맨 권정일”입니다. 한 사람의 홍보가 몇 분을 모시고 익산에 오실 줄은 모릅니다. 언제나 나의 가족같이 대하면서 편안하게 구경하면 마음속 깊게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저를 필요로하고, 익산을 알려나가는 일이라면 두손두발 걷어 붙이고 나설것입니다.
저는 시간을 만들어서 여행을 잘하는 편인데요. 꽃과 풍경 사진을 찍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좋은 기억과 아름다운 것들을 나 혼자 느끼는 것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타지역도 소개를 하는 편입니다. 제 SNS 공간에 오시면 보다 많은 정보를 얻어 가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일상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의 후배들, 가족들, 익산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나 보다는 너”, “너 보다는 우리” 함께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이 글은 익산참여연대 소식지 참여와자치 99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