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무너진 일상과 비상계엄 선포

운영자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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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무너진 일상과 비상계엄 선포


장시근 공동대표


  모든 일은 시간이 지나면 추억으로 남는다지만, 그 아픔과 슬픔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2024년의 첫 장은 가족과 함께 미륵산에서 해돋이를 보며 희망찬 포부를 갖는 것으로 열었다. 올해는 딸과 아들이 사회구성원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환갑을 맞이한 나는 인생 2막을 철저히 준비하는 한 해가 되길 다짐했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간절히 빌고 마음을 다잡았다.


  평범했던 일상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구급대원의 다급한 전화에서부터였다. 아버지가 외딴곳에서 넘어지셨고, 이를 발견한 지인이 119에 신고해 병원으로 이송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머리와 코를 심하게 다쳐 코 성형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평생 병원 신세를 진 적 없던 아버지는 병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시고, 팔에 꽂힌 주사기를 빼며 집에 가겠다고 소란을 피우셨다. 그런 아버지를 막고 있는 내 모습은 마치 소설의 한 장면 같았다.     나이가 들면서 하체에 힘이 없어진 아버지는 결국 또랑에 빠지는 사고까지 겪으셨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직접 상황을 알리지 않으셨고, 나는 이 소식을 타인을 통해 전해들었다. 이는 마치 미래의 어두운 터널을 암시하는 암호 같았다. 사고의 후유증 때문인지 아버지는 식사를 위해 일어나는 것조차 힘겨워하셨다. 연로하신 어머니 역시 아버지를 일으켜 세울 수 없으니 결국 어머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나 죽겠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나이가 든다는 것은 부모님에게도 또 다른 삶의 형태가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할 텐데,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30년 후 내 모습을 떠올리니 쓸쓸함과 허무함이 앞을 가렸다.


  아버지의 요양원 생활과 어머니의 노치원 생활이 이어지며, 나는 자식의 도리를 다하고자 어머니가 계신 진안 집과 진안 주간보호센터, 그리고 아버지가 계신 전주의 요양원을 오가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라며 애써 자위했다. 자신의 의지대로 신체를 움직일 수 없고, 심지어는 대소변과 식사조차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삶을 보며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올해는 최소한의 경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금, 토, 일에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가족과 나의 미래를 위해 쓰고 싶었지만, 내 포부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산산이 갈라진 삶에 적응해 가던 어느 날, 사건은 예기치 않게 일어났다. 한밤중에 영화를 보고 있던 나에게 딸이 비상계엄이라는 소식을 전해왔다. 채널을 돌려보니, 국회를 통제한 차벽과 경찰, 그리고 그와 대치하는 시민들과 언론인들의 모습이 비쳤다. 분명히 티비 화면을 보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은 아마 계엄을 부정하고 싶은 내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화면을 보고있는 나는 말 그대로 피가 거꾸로 솟고 살이 떨렸다. 이는 아마 45년 전 계엄의 트라우마 때문일 것이다. 당시 군부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광주 시민을 학살하며 정치인을 감금하고 언론을 통제했으며, 집회와 파업을 불허하고 영장 없이 체포했다. 이제는 역사책 속에 남아있던 기억들이 다시 현실로 다가왔다.


  이번 계엄령 선포에서는 파렴치한 종북 좌파와 반국가 세력, 그리고 야당을 도둑놈의 소굴로 규정한 포고문이 발표되었다.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고, 국회의원을 도둑이라고 한다면, 그 국회의원을 선출한 국민 또한 도둑이라 말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윤석열을 국민이 선출했다는 이유로 그동안 눈 감을 감고 귀를 막으며 현실을 외면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더는 그럴 수 없었다. 다수의 국민을 반국가 세력과 도둑으로 몰아가며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기본권을 박탈하는 윤석열이라는 폭탄에 안전핀을 꽂아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거리로 나가 탄핵을 외쳤다.


  현재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윤석열은 직무 정지상태에 있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헌재에서 탄핵을 인용하여 대통령직에서 파면되고, 윤석열과 그에 가담하고 동조한 이들 또한 구속되어야만, 우리의 일상은 다시 회복될 것이다.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선,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질하는 개헌과 승자독식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등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또한, 국민이 무섭다는 것을 정치권이 깨닫도록 국회의원 소환제 법률안을 제정해야 한다.


  무너진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익산참여연대 회원들과 함께하며, 나 혼자가 아님을 느끼고 많은 위안이 되었다. 모두가 따뜻한 연말을 보내길 바란다. 2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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