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cdn.imweb.me/upload/S202207072a5a947ac8bd9/68fe7120ad72e.jpg)
모두의 오월
하나되는 오월
글 이영훈 지도위원
나뭇가지와 잎들이 흔들리며 요란스레 울어대는 건 억울하게 죽어간 넋들의 몸부림인지 모른다. 청명한 하늘에 밝고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망월묘역에 들어서니 착잡하고 무거운 마음에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오후 무렵부터 강풍에 비바람이 몰아친다는 예보를 들은 것도 그렇고, 기념주간이 시작되어 전국 곳곳에서 모여든 추모객들로 복작거릴 시간을 피해 서둘러 다녀올 요량으로 나섰는데 다행히 밀리지 않고 도착했다. 진입하는 도로 곳곳은 물론 주차장 주변에까지 형형색색 다양한 주장과 의견이 달린 현수막이 44주년을 맞는 5월을 실감케 한다.
유족회가 준비한 ‘추모리본쓰기’ 공간(부스)이 입구 들어서기 전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많은 이의 마음과 지향이 담긴 리본들이 줄줄이 매달려 흔들리는 모습이 부르는 손짓처럼 보인다. 펜을 들어 리본에 무슨 말을 쓸까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마음이 차분해진다. 어지러운 생각도 잠시, 간단한 글귀 앞뒤로 적는다.
“민주의 꽃. 역사의 숨결”“기억하고 함께 합니다.”
입구를 지나면서 곳곳에 기념식을 준비하는 천막과 무대를 설치하는 공사자재와 일꾼들이 눈에 띄면서 좀 어수선한 분위기다.
높이 솟은 추모탑이 맑고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5월의 기상이 쭈-욱 뻗어가는 느낌이다. 분향을 하고 묵념을 하며 영령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이 순간이, 매번 처음처럼 무거운 마음이다. 먹먹한 가슴에 눈시울은 붉어진다. 부끄럽고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이다.
‘국립5.18민주묘지’
제1 묘역에서 원광대학교 임균수열사, 5.18최초의 희생자 전북대학교 이세종열사. 윤상현-박기순열사, 박관현열사, 윤한봉선생님과 이영희선생님 등 널리 알려진 분들도 보고 간간이 무명열사도 보았다. 구묘역에 가서는 김형근형을 보고, 조성용선생님도 보고, 조성만열사 등 전북지역에 연고를 둔 분들을 만났다.
김형근형하고는 86년 전주교도소에서 징역살이를 같이한 인연을 시작으로 지역에서 함께 했던 분이고, 조성용선생님은 오송회용공조작사건으로 고초를 받으셨는데 이후 적극적인 활동을 하셨던 분으로 인연이 닿은 분이다.
이곳에는 계속 많은 분들이 모셔지고 있는데, 민주와 통일, 해방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던지며 살다 돌아가신 분들이다. 이러한 희생과 죽음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44년 전, 5월 어느 날.
당시 고등학교 2학년으로 공부만(?) 알던 나는 5월의 참상이 담긴 유인물 한 장을 보고 삶이 달라졌다. 함께 읽어본 친구들은 물론, 젊은 청년과 학생들이 전국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광주항쟁을 통해 시작된 각성과 투쟁이 6월항쟁을 만들어냈고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5월은 모두의 오월이 되었다.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침몰하는 내내 방치한 국가권력이나,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고도 대처하지 않다가 큰 희생자를 낳은 권력기관도 국민을 희생시키기는 매한가지로 5월 광주와 닮은꼴이다. 더욱이 조사와 책임을 미루는 뻔뻔함으로 인해, 또 다른 희생을 부르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노란 옷을 입은 세월호 유족들과 보라색 옷을 입은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함께하는 44주기 행사가 ‘하나되는 오월’이 된 이유도 그럴 것이다.
언제고, 따뜻하고 뿌듯한 5월을 맞이할 거라고 생각하며.
![](https://cdn.imweb.me/upload/S202207072a5a947ac8bd9/daea59cf98ace.jpg)
- 사진출처 : 연합뉴스
모두의 오월
하나되는 오월
글 이영훈 지도위원
나뭇가지와 잎들이 흔들리며 요란스레 울어대는 건 억울하게 죽어간 넋들의 몸부림인지 모른다. 청명한 하늘에 밝고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망월묘역에 들어서니 착잡하고 무거운 마음에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오후 무렵부터 강풍에 비바람이 몰아친다는 예보를 들은 것도 그렇고, 기념주간이 시작되어 전국 곳곳에서 모여든 추모객들로 복작거릴 시간을 피해 서둘러 다녀올 요량으로 나섰는데 다행히 밀리지 않고 도착했다. 진입하는 도로 곳곳은 물론 주차장 주변에까지 형형색색 다양한 주장과 의견이 달린 현수막이 44주년을 맞는 5월을 실감케 한다.
유족회가 준비한 ‘추모리본쓰기’ 공간(부스)이 입구 들어서기 전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많은 이의 마음과 지향이 담긴 리본들이 줄줄이 매달려 흔들리는 모습이 부르는 손짓처럼 보인다. 펜을 들어 리본에 무슨 말을 쓸까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마음이 차분해진다. 어지러운 생각도 잠시, 간단한 글귀 앞뒤로 적는다.
“민주의 꽃. 역사의 숨결”“기억하고 함께 합니다.”
입구를 지나면서 곳곳에 기념식을 준비하는 천막과 무대를 설치하는 공사자재와 일꾼들이 눈에 띄면서 좀 어수선한 분위기다.
높이 솟은 추모탑이 맑고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5월의 기상이 쭈-욱 뻗어가는 느낌이다. 분향을 하고 묵념을 하며 영령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이 순간이, 매번 처음처럼 무거운 마음이다. 먹먹한 가슴에 눈시울은 붉어진다. 부끄럽고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이다.
‘국립5.18민주묘지’
제1 묘역에서 원광대학교 임균수열사, 5.18최초의 희생자 전북대학교 이세종열사. 윤상현-박기순열사, 박관현열사, 윤한봉선생님과 이영희선생님 등 널리 알려진 분들도 보고 간간이 무명열사도 보았다. 구묘역에 가서는 김형근형을 보고, 조성용선생님도 보고, 조성만열사 등 전북지역에 연고를 둔 분들을 만났다.
김형근형하고는 86년 전주교도소에서 징역살이를 같이한 인연을 시작으로 지역에서 함께 했던 분이고, 조성용선생님은 오송회용공조작사건으로 고초를 받으셨는데 이후 적극적인 활동을 하셨던 분으로 인연이 닿은 분이다.
이곳에는 계속 많은 분들이 모셔지고 있는데, 민주와 통일, 해방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던지며 살다 돌아가신 분들이다. 이러한 희생과 죽음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44년 전, 5월 어느 날.
당시 고등학교 2학년으로 공부만(?) 알던 나는 5월의 참상이 담긴 유인물 한 장을 보고 삶이 달라졌다. 함께 읽어본 친구들은 물론, 젊은 청년과 학생들이 전국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광주항쟁을 통해 시작된 각성과 투쟁이 6월항쟁을 만들어냈고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5월은 모두의 오월이 되었다.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침몰하는 내내 방치한 국가권력이나,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고도 대처하지 않다가 큰 희생자를 낳은 권력기관도 국민을 희생시키기는 매한가지로 5월 광주와 닮은꼴이다. 더욱이 조사와 책임을 미루는 뻔뻔함으로 인해, 또 다른 희생을 부르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노란 옷을 입은 세월호 유족들과 보라색 옷을 입은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함께하는 44주기 행사가 ‘하나되는 오월’이 된 이유도 그럴 것이다.
언제고, 따뜻하고 뿌듯한 5월을 맞이할 거라고 생각하며.
- 사진출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