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달리고 싶었다.
이영훈 지도위원
달릴 때의 느낌이 어땠는지 새삼 궁금했다. 벌써 10년이 넘어가니 좀 되긴 했나 보다. 2013년 12회 ‘보석마라톤대회’와 2015년 ‘원불교 100주년 기념 마라톤’을 끝으로 달려본 적이 없었다. 마라톤을 떠나 축구든 뭐든 일상에서 달리기가 사라진 것이다. 76년 중학교 때 처음 오래달리기를 한 기억은 생생한데, 다 커서 달린 마라톤대회가 주는 기분이나 느낌은 오히려 아득한 느낌이라니. 그래서 도전해보기로 했다.
어쩌면 내 몸이 뛰어보라고 더 보챘는지도 모르지만. ‘2024전국나주마라톤대회’는 그렇게 다가왔다.
왜 나주냐고? 영산강 강변을 따라 뛴다고 생각하니 너무 멋지지 않은가. 물론 기념품도 좋고, 뛰고 나서 먹을 홍어에 대한 기대감도 컸던 게 사실이고. 이런저런 기대감으로 등록해놓고 보니 대회주최가 MBN이고 해마다 열렸던 ‘나주마라톤대회’와는 달리 처음 열리는 대회라고 해서 조금 당황했지만. 10년 만에 뛰어본다는 기대와 설레임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해마다 대회에 참석하며 마라톤을 즐기는 지인의 충고도 듣고 궁금한 것도 묻고 했지만 정작 중요한 사전연습을 못한 것이 문제였다. 집 앞에 초등학교 운동장도 있고, 소각장 주변에 뛰기 좋은 코스가 있다는 정보도 들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말았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에, 산행을 꾸준히 하는데 뭐 어떻겠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산행과 쓰는 근육이 다르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내가 선수도 아니고 기록을 챙기는 것도 아닌데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물론 그 댓가는 혹독했다)
달리기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기회로 삼겠다는 정도가 나름 의미랄까. 내 몸이 잊고 있었던 달리기를 경험케 하는 기회만으로 충분했다.
2013년 ‘익산보석마라톤’에서 기념품으로 입었던 긴 팔 티셔츠에 기록칩이 달린 배번호를 달고, 10년 넘게 버티고 있는 당시의 러닝화를 신으니 그럴듯한 폼이 갖춰졌다. 구색을 갖추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목표는 10km. 1시간 이내로 들어오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어디든 달릴 수 있을 느낌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어 드디어 스타트라인을 통과했다.
3킬로까지는 정말 좋았다. 아, 이 상쾌한 기분이라니. 강변도 둘러보고 주변 달리는 사람들도 보고, 또 앞지르는 재미도 즐거웠다. 하지만 4킬로를 넘기면서 숨이 턱턱 차기 시작하고, 무릎 주변의 근육들이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속도가 늦춰지고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반환점을 돌면서는 고관절도 어떻게 해달라고 들이대고. 그렇게 마라톤의 기억이 몸 구석구석에 새겨지는 시간이었다. (기록은 차마 밝힐 수 없음을...)
몸의 고통에 비례해서 마음의 번민이 뒤죽박죽 섞이는 시간을 견뎌내며 이룬 완주의 기쁨은 뿌듯했다. 하지만 그 고통이 어디 가랴. 그래서 다짐했다. 다음 마라톤은 다시 10년 뒤에 뛰겠노라고.
달리는 인구가 늘고 있다고 한다. 마라톤대회를 염두에 두고 활동하고 있는 인구가 57만 명을 넘을 거라는 통계도 있다. 올해 마라톤대회를 소개하는 ‘온라인마라톤’에 올라온 정식 대회만 380개에 이른다고 한다. 21년의 248개에 비춰보면 폭발적인 증가세다.
전북만 해도 마라톤대회가 시군마다 있을 정도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전주는 월드인라인마라톤대회와 부부가족마라톤대회, 독서마라톤대회가 있고, 군산도 인라인대회와 새만금마라톤대회가 있다. 김제새만금지평선마라톤대회. 부안해변마라톤대회, 고창고인돌마라톤대회, 진안마이산마라톤대회, 남원춘향마라톤대회, 정읍단축마라톤대회, 장수트레일레이스마라톤대회, 순창강천산트레일레이스대회, 무주자전거마라톤대회도 있다.
그런데 익산은 왜 없을까?
페르시아의 침략을 아테네에 알리기 위해 달리며 시작한 마라톤은 현대 스포츠의 상징과도 같다. 올림픽 마지막 종목이 마라톤이지 않은가.
수많은 생명을 죽이는 전쟁 말고 화해와 평화의 마음을 전하는 마라톤처럼, 남북은 물론 세계가 화해하길 바라면서......
문득 달리고 싶었다.
이영훈 지도위원
달릴 때의 느낌이 어땠는지 새삼 궁금했다. 벌써 10년이 넘어가니 좀 되긴 했나 보다. 2013년 12회 ‘보석마라톤대회’와 2015년 ‘원불교 100주년 기념 마라톤’을 끝으로 달려본 적이 없었다. 마라톤을 떠나 축구든 뭐든 일상에서 달리기가 사라진 것이다. 76년 중학교 때 처음 오래달리기를 한 기억은 생생한데, 다 커서 달린 마라톤대회가 주는 기분이나 느낌은 오히려 아득한 느낌이라니. 그래서 도전해보기로 했다.
어쩌면 내 몸이 뛰어보라고 더 보챘는지도 모르지만. ‘2024전국나주마라톤대회’는 그렇게 다가왔다.
왜 나주냐고? 영산강 강변을 따라 뛴다고 생각하니 너무 멋지지 않은가. 물론 기념품도 좋고, 뛰고 나서 먹을 홍어에 대한 기대감도 컸던 게 사실이고. 이런저런 기대감으로 등록해놓고 보니 대회주최가 MBN이고 해마다 열렸던 ‘나주마라톤대회’와는 달리 처음 열리는 대회라고 해서 조금 당황했지만. 10년 만에 뛰어본다는 기대와 설레임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해마다 대회에 참석하며 마라톤을 즐기는 지인의 충고도 듣고 궁금한 것도 묻고 했지만 정작 중요한 사전연습을 못한 것이 문제였다. 집 앞에 초등학교 운동장도 있고, 소각장 주변에 뛰기 좋은 코스가 있다는 정보도 들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말았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에, 산행을 꾸준히 하는데 뭐 어떻겠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산행과 쓰는 근육이 다르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내가 선수도 아니고 기록을 챙기는 것도 아닌데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물론 그 댓가는 혹독했다)
달리기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기회로 삼겠다는 정도가 나름 의미랄까. 내 몸이 잊고 있었던 달리기를 경험케 하는 기회만으로 충분했다.
2013년 ‘익산보석마라톤’에서 기념품으로 입었던 긴 팔 티셔츠에 기록칩이 달린 배번호를 달고, 10년 넘게 버티고 있는 당시의 러닝화를 신으니 그럴듯한 폼이 갖춰졌다. 구색을 갖추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목표는 10km. 1시간 이내로 들어오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어디든 달릴 수 있을 느낌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어 드디어 스타트라인을 통과했다.
3킬로까지는 정말 좋았다. 아, 이 상쾌한 기분이라니. 강변도 둘러보고 주변 달리는 사람들도 보고, 또 앞지르는 재미도 즐거웠다. 하지만 4킬로를 넘기면서 숨이 턱턱 차기 시작하고, 무릎 주변의 근육들이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속도가 늦춰지고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반환점을 돌면서는 고관절도 어떻게 해달라고 들이대고. 그렇게 마라톤의 기억이 몸 구석구석에 새겨지는 시간이었다. (기록은 차마 밝힐 수 없음을...)
몸의 고통에 비례해서 마음의 번민이 뒤죽박죽 섞이는 시간을 견뎌내며 이룬 완주의 기쁨은 뿌듯했다. 하지만 그 고통이 어디 가랴. 그래서 다짐했다. 다음 마라톤은 다시 10년 뒤에 뛰겠노라고.
달리는 인구가 늘고 있다고 한다. 마라톤대회를 염두에 두고 활동하고 있는 인구가 57만 명을 넘을 거라는 통계도 있다. 올해 마라톤대회를 소개하는 ‘온라인마라톤’에 올라온 정식 대회만 380개에 이른다고 한다. 21년의 248개에 비춰보면 폭발적인 증가세다.
전북만 해도 마라톤대회가 시군마다 있을 정도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전주는 월드인라인마라톤대회와 부부가족마라톤대회, 독서마라톤대회가 있고, 군산도 인라인대회와 새만금마라톤대회가 있다. 김제새만금지평선마라톤대회. 부안해변마라톤대회, 고창고인돌마라톤대회, 진안마이산마라톤대회, 남원춘향마라톤대회, 정읍단축마라톤대회, 장수트레일레이스마라톤대회, 순창강천산트레일레이스대회, 무주자전거마라톤대회도 있다.
그런데 익산은 왜 없을까?
페르시아의 침략을 아테네에 알리기 위해 달리며 시작한 마라톤은 현대 스포츠의 상징과도 같다. 올림픽 마지막 종목이 마라톤이지 않은가.
수많은 생명을 죽이는 전쟁 말고 화해와 평화의 마음을 전하는 마라톤처럼, 남북은 물론 세계가 화해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