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문(魚水門)
장시근 대표

서울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에 등재된 창덕궁 후원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시야가 열리며 잔잔한 연못 하나가 나타난다. 연꽃이 피는 연못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부용지(芙蓉池)이다. 이 연못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조선 왕실이 자연 속에서 학문과 정치를 함께 성찰하던 공간이었다.
연못 북쪽 언덕에는 단정한 누각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왕실 도서관이었던 주합루(宙合樓)이다. 이곳에서 왕과 학자들은 책을 읽고 학문을 논하며 나라의 일을 깊이 숙고하였다.
주합루로 오르는 계단 앞에는 작은 문 하나가 서 있다. 바로 어수문(魚水門)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 문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그 이름 속에는 조선의 깊은 정치 철학이 담겨 있다.
어수문은 글자 그대로 ‘물고기와 물의 문’이라는 뜻이다. 옛사람들은 군주와 백성의 관계를 물과 물고기에 비유하였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듯이, 권력 또한 백성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동양 정치사상에는 이런 말이 전해 내려온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배를 뒤집기도 한다.”
백성은 나라를 떠받치는 힘이기도 하지만, 권력이 백성을 외면할 때 그 권력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왕이 학문을 공부하고 국정을 고민하던 주합루 앞에 ‘어수문’이라는 이름의 문을 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문은 왕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권력은 백성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용지의 공간을 천천히 바라보면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자연을 상징하는 부용지, 학문과 정치를 상징하는 주합루,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어수문. 이 작은 공간에는 자연과 백성 속에서 정치를 성찰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조선의 궁궐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정치 철학을 담은 공간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왕은 사라졌고 궁궐 또한 정치의 중심이 아니다. 그러나 어수문이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다.
민주사회에서 권력의 주인은 시민이다. 그리고 시민의 삶과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시민단체다.
하지만 시민단체 역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시민 속에 있는가.
시민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있는가.
시민의 삶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가.
어수문의 이름을 빌려 말하자면 시민은 물이고 시민단체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물고기와 같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듯이 시민단체 역시 시민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시민과 함께할 때 시민단체는 힘을 얻고, 시민의 삶 속에서 움직일 때 비로소 사회를 바꾸는 힘도 생겨난다.
창덕궁 후원의 어수문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궁궐의 수많은 건물 가운데 조용히 서 있는 작은 문일 뿐이다. 그러나 그 문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정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시민과 얼마나 가까이 서 있는가.
부용지의 물 위에는 지금도 잔잔한 바람이 흐른다. 그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우리의 시민사회 역시 시민이라는 물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어수문은 궁궐의 작은 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시민사회에게는 시민과 시민단체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문이기도 하다.
- 이 글은 익산참여연대 참여와자치 109호 소식지 칼럼에 실렸습니다.
어수문(魚水門)
장시근 대표
서울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에 등재된 창덕궁 후원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시야가 열리며 잔잔한 연못 하나가 나타난다. 연꽃이 피는 연못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부용지(芙蓉池)이다. 이 연못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조선 왕실이 자연 속에서 학문과 정치를 함께 성찰하던 공간이었다.
연못 북쪽 언덕에는 단정한 누각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왕실 도서관이었던 주합루(宙合樓)이다. 이곳에서 왕과 학자들은 책을 읽고 학문을 논하며 나라의 일을 깊이 숙고하였다.
주합루로 오르는 계단 앞에는 작은 문 하나가 서 있다. 바로 어수문(魚水門)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 문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그 이름 속에는 조선의 깊은 정치 철학이 담겨 있다.
어수문은 글자 그대로 ‘물고기와 물의 문’이라는 뜻이다. 옛사람들은 군주와 백성의 관계를 물과 물고기에 비유하였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듯이, 권력 또한 백성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동양 정치사상에는 이런 말이 전해 내려온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배를 뒤집기도 한다.”
백성은 나라를 떠받치는 힘이기도 하지만, 권력이 백성을 외면할 때 그 권력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왕이 학문을 공부하고 국정을 고민하던 주합루 앞에 ‘어수문’이라는 이름의 문을 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문은 왕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권력은 백성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용지의 공간을 천천히 바라보면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자연을 상징하는 부용지, 학문과 정치를 상징하는 주합루,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어수문. 이 작은 공간에는 자연과 백성 속에서 정치를 성찰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조선의 궁궐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정치 철학을 담은 공간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왕은 사라졌고 궁궐 또한 정치의 중심이 아니다. 그러나 어수문이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다.
민주사회에서 권력의 주인은 시민이다. 그리고 시민의 삶과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시민단체다.
하지만 시민단체 역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시민 속에 있는가.
시민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있는가.
시민의 삶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가.
어수문의 이름을 빌려 말하자면 시민은 물이고 시민단체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물고기와 같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듯이 시민단체 역시 시민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시민과 함께할 때 시민단체는 힘을 얻고, 시민의 삶 속에서 움직일 때 비로소 사회를 바꾸는 힘도 생겨난다.
창덕궁 후원의 어수문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궁궐의 수많은 건물 가운데 조용히 서 있는 작은 문일 뿐이다. 그러나 그 문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정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시민과 얼마나 가까이 서 있는가.
부용지의 물 위에는 지금도 잔잔한 바람이 흐른다. 그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우리의 시민사회 역시 시민이라는 물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어수문은 궁궐의 작은 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시민사회에게는 시민과 시민단체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문이기도 하다.
- 이 글은 익산참여연대 참여와자치 109호 소식지 칼럼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