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글 이영훈 지도위원
흔들거리는 비키니옷장을 해체하고 속에 있던 옷가지를 정리하니 라면 한 박스 남짓한 양이다. 주변에 뒹굴고 있는 책과 기타 물품 모은 것 한 박스하고, 밥상 옆에 석유곤로를 실은 위로 이불보따리 얹으니 딱 한 수레 분량이다. 다른 방 사람들 깰까 봐 조심조심 짐 들고 옆걸음으로 걷다보니 좁다란 통로를 지나기가 쉽지 않다.
옆방 김형은 스탠드바 일 끝나고 오면 새벽도 한참 지난 시간이니 방이 비어있을 참이다. 그래도 가끔 술 한잔 나눴던 사이라 말없이 떠나려니 조금 아쉽다. 김형 옆방의 아가씨들은 언제 오고 가는지 모른다. 직장에 다닌다는데 말이 없으니 도통 알 수가 없다. 뭐, 말 안 해도 대충들 아는 눈치지만.
대부분이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이삼십 대 젊은이들 약 삼만 명이 셋방살이를 하는 이곳은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이 들고 나지만 가끔 싸우는 소리를 제외하면 그래도 조용한 편이다. 주인아주머니 얘기로는 수시로 들고나는 뜨네기들이 대부분 살고 있다고 했던가. 역 뒤편으로 송학동과 모현동으로 이어지는 기다란 띠를 형성하고 있는 셋방촌은 역 폭발사고로 대부분이 파괴되고 새로 지어졌다지만, 여전히 낡고 허름한 모습을 띠고 있다.
다른 방 사람들도 늦은 밤 퇴근하고 이제 막 잠 들었을 시간이다.
이삿짐은 별거 없지만, 늦장 부리다 시간이 길어졌다. 가끔 개 짖는 소리나 들릴 뿐 다행히 사위는 인기척 없이 조용하다. 송학동에서 남바우 지나 신용동까지 가려면 얼추 1시간은 잡아야 한다. 작은 수레지만 밀고 당기며 가려니 새벽 쌀쌀한 날이지만 땀이 솟는다. 라면공장 앞 조명 아래서 잠시 휴식을 취하곤 곧장 새로 들어갈 집으로 향한다. 늦은 밤 어둑어둑한 밤길에 새로운 자취방을 찾아 떠나는 씁쓸한? 이사길이다. <야밤도주 아닐까 의심들 마시라. 왜 씁쓸하냐고? 밝은 낯이 아니라 밤에 나선 길이라 그랬을까? 신세 한탄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이것저것 사연이 많았던 때니까.>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달도 보일 듯 말 듯, 별도 숨어버린 밤길을 청춘 둘이 알코올로 달궈진 뜨거운 김을 뿜으며 부지런히 걷는다. 건널목을 지날 때면 총알처럼 달리는 차들 피하느라 이삿짐 수레가 덜컹거리며 요동친다. 흔들리는 충격에 떨어질까 이불 짐 움켜잡은 늘보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라면집 두 곳을 지나면 골목 양측으로 몇 집이 보이고, 끝머리쯤 시멘벽돌 담장에 녹색 철대문집이 우리가 새로 살집이다. 마당도 있는 개인주택인데 주인집 마당 너머 별채처럼 지어진 방 두 개에 부엌이 딸린 별채다. 옆방에 다른 세입자가 없고 주인집도 조금 떨어져 있으니 그나마 조금은 독립성이 보장된 달까. 이전 살던 집보다는 훨씬 나은 방이다. 청춘의 꿈을 달굴 새로운 둥지다.
학교에서 역까지 수시로 스쿨버스가 다니던 때다. 그래도 대부분 일 마치고 집에 갈 때쯤이면 버스도 끝 긴 시간이라 걸어서 다녀야 했다. 신용동에서 송학동까지 국도 1호라는 큰길을 따라 걷다 보면 역 옆으로 일제 때 지었다는 굴다리가 나오고, 이곳을 지나야 송학동 자취촌이 나온다. 굴다리 나와서 오른쪽으로 한 오십 미터 더 걸어야 지난 겨울을 났던 월세방이 있다. 가는 길에 슈퍼가 있어 이것저것 사기에 편한 동네였는데.
단칸방은 두 평 남짓했고 좁은 부엌이 딸린 월세방에서 겨울을 나고 보니 안 되겠다 싶어 이사를 결심했다. 불을 때도 온돌이 시원찮았다. 부엌이 좁아 연탄도 많이 들일 수 없어 오십 장 정도밖에 들일 수 없다. 떨어지면 슈퍼에서 사다 쓰는 식으로 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자주 연탄불을 꺼뜨린다는 점이다. 그때마다 번개탄 사다 불 지피거나, 옆방 김형 부엌에서 타고 있는 밑불 연탄 꺼내 가져와 아궁이에 지핀다. 물론 내가 가져간 새 연탄을 위에 얹어주고. 이 짓도 반복하다 보면 정말 힘들다. 겨울을 나려면 연탄불을 지켜야 했다.
자주 모이고 회의하고 술자리하고 짬을 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계속되는 일상이지만, 겨울 연탄은 시간 되면 갈아 줘야 했다. 술자리에서는 중간에 나와 연탄을 갈 곤 했다. 이조차 역 앞에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지, 학교 앞에서 집까지 와 연탄 갈고 다시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국, 겨울 한번 지내보고 이사를 한 것이다.
마당에 들어서 마루 등부터 불을 켠다. 전구에서 뻗어 나온 빛이 마당 안에 겨우 머물러 좀 답답하지만 그래도 짐을 푸는 데는 어렵지 않다. 미리 와서 이사 나간 집을 둘러보고 청소도 미리 해놓고 열통도 두 개나 사서 준비해 놨던 터다. 짐이라고 해봐야 너무도 간단해서 부엌으로 곤로와 냄비와 식기 세트 들이고, 큰방으로 비키니옷장과 옷가지, 이불 풀어내니 끝이다. 책과 잡스러운 물건이야 어차피 이리저리 굴러다닐 거라 대충 풀어놓고, 제일 중요한 등사기와 종이 등 작업?도구 일체는 작은 방으로 보낸다. 이제 이곳은 생활공간이자 작업실이고 하룻밤에만 수천 장을 찍어낼 수 있는 공장이다.
이사 첫날 어찌 그냥 지날 것인가. 미리 사둔 막걸리와 새우깡을 꺼낸다. 국물이 흘러내려 냄새를 풍기는 통에서 김치를 내니 그럴듯한 술상이 차려졌다. 늦었지만 축하는 해야지. 시간도 그렇고 힘도 좀 썼던 터라 출출한 터다. 두부가 좀 아쉽지만 맛나게 들이킨 한 잔에 허기를 달랜다. 쓰러지듯 잠자리에 든 하루는 정말 길었다.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듯 새벽을 알리는 홰치는 소리가 밤하늘을 가른다. 연거푸 몇 차례 울어대니 강아지들도 덩달아 소란스럽다. 비몽사몽 어떻게든 잠자리를 지키려 뒤척여 보는데, 쿵쾅쿵쾅 요란스럽게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누구여?-
-나여, 빨리 일어나, 물뜨러 가야지-
-벌써? 몇신디?- 엘러펀이 왔다.
자취
글 이영훈 지도위원
흔들거리는 비키니옷장을 해체하고 속에 있던 옷가지를 정리하니 라면 한 박스 남짓한 양이다. 주변에 뒹굴고 있는 책과 기타 물품 모은 것 한 박스하고, 밥상 옆에 석유곤로를 실은 위로 이불보따리 얹으니 딱 한 수레 분량이다. 다른 방 사람들 깰까 봐 조심조심 짐 들고 옆걸음으로 걷다보니 좁다란 통로를 지나기가 쉽지 않다.
옆방 김형은 스탠드바 일 끝나고 오면 새벽도 한참 지난 시간이니 방이 비어있을 참이다. 그래도 가끔 술 한잔 나눴던 사이라 말없이 떠나려니 조금 아쉽다. 김형 옆방의 아가씨들은 언제 오고 가는지 모른다. 직장에 다닌다는데 말이 없으니 도통 알 수가 없다. 뭐, 말 안 해도 대충들 아는 눈치지만.
대부분이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이삼십 대 젊은이들 약 삼만 명이 셋방살이를 하는 이곳은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이 들고 나지만 가끔 싸우는 소리를 제외하면 그래도 조용한 편이다. 주인아주머니 얘기로는 수시로 들고나는 뜨네기들이 대부분 살고 있다고 했던가. 역 뒤편으로 송학동과 모현동으로 이어지는 기다란 띠를 형성하고 있는 셋방촌은 역 폭발사고로 대부분이 파괴되고 새로 지어졌다지만, 여전히 낡고 허름한 모습을 띠고 있다.
다른 방 사람들도 늦은 밤 퇴근하고 이제 막 잠 들었을 시간이다.
이삿짐은 별거 없지만, 늦장 부리다 시간이 길어졌다. 가끔 개 짖는 소리나 들릴 뿐 다행히 사위는 인기척 없이 조용하다. 송학동에서 남바우 지나 신용동까지 가려면 얼추 1시간은 잡아야 한다. 작은 수레지만 밀고 당기며 가려니 새벽 쌀쌀한 날이지만 땀이 솟는다. 라면공장 앞 조명 아래서 잠시 휴식을 취하곤 곧장 새로 들어갈 집으로 향한다. 늦은 밤 어둑어둑한 밤길에 새로운 자취방을 찾아 떠나는 씁쓸한? 이사길이다. <야밤도주 아닐까 의심들 마시라. 왜 씁쓸하냐고? 밝은 낯이 아니라 밤에 나선 길이라 그랬을까? 신세 한탄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이것저것 사연이 많았던 때니까.>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달도 보일 듯 말 듯, 별도 숨어버린 밤길을 청춘 둘이 알코올로 달궈진 뜨거운 김을 뿜으며 부지런히 걷는다. 건널목을 지날 때면 총알처럼 달리는 차들 피하느라 이삿짐 수레가 덜컹거리며 요동친다. 흔들리는 충격에 떨어질까 이불 짐 움켜잡은 늘보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라면집 두 곳을 지나면 골목 양측으로 몇 집이 보이고, 끝머리쯤 시멘벽돌 담장에 녹색 철대문집이 우리가 새로 살집이다. 마당도 있는 개인주택인데 주인집 마당 너머 별채처럼 지어진 방 두 개에 부엌이 딸린 별채다. 옆방에 다른 세입자가 없고 주인집도 조금 떨어져 있으니 그나마 조금은 독립성이 보장된 달까. 이전 살던 집보다는 훨씬 나은 방이다. 청춘의 꿈을 달굴 새로운 둥지다.
학교에서 역까지 수시로 스쿨버스가 다니던 때다. 그래도 대부분 일 마치고 집에 갈 때쯤이면 버스도 끝 긴 시간이라 걸어서 다녀야 했다. 신용동에서 송학동까지 국도 1호라는 큰길을 따라 걷다 보면 역 옆으로 일제 때 지었다는 굴다리가 나오고, 이곳을 지나야 송학동 자취촌이 나온다. 굴다리 나와서 오른쪽으로 한 오십 미터 더 걸어야 지난 겨울을 났던 월세방이 있다. 가는 길에 슈퍼가 있어 이것저것 사기에 편한 동네였는데.
단칸방은 두 평 남짓했고 좁은 부엌이 딸린 월세방에서 겨울을 나고 보니 안 되겠다 싶어 이사를 결심했다. 불을 때도 온돌이 시원찮았다. 부엌이 좁아 연탄도 많이 들일 수 없어 오십 장 정도밖에 들일 수 없다. 떨어지면 슈퍼에서 사다 쓰는 식으로 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자주 연탄불을 꺼뜨린다는 점이다. 그때마다 번개탄 사다 불 지피거나, 옆방 김형 부엌에서 타고 있는 밑불 연탄 꺼내 가져와 아궁이에 지핀다. 물론 내가 가져간 새 연탄을 위에 얹어주고. 이 짓도 반복하다 보면 정말 힘들다. 겨울을 나려면 연탄불을 지켜야 했다.
자주 모이고 회의하고 술자리하고 짬을 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계속되는 일상이지만, 겨울 연탄은 시간 되면 갈아 줘야 했다. 술자리에서는 중간에 나와 연탄을 갈 곤 했다. 이조차 역 앞에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지, 학교 앞에서 집까지 와 연탄 갈고 다시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국, 겨울 한번 지내보고 이사를 한 것이다.
마당에 들어서 마루 등부터 불을 켠다. 전구에서 뻗어 나온 빛이 마당 안에 겨우 머물러 좀 답답하지만 그래도 짐을 푸는 데는 어렵지 않다. 미리 와서 이사 나간 집을 둘러보고 청소도 미리 해놓고 열통도 두 개나 사서 준비해 놨던 터다. 짐이라고 해봐야 너무도 간단해서 부엌으로 곤로와 냄비와 식기 세트 들이고, 큰방으로 비키니옷장과 옷가지, 이불 풀어내니 끝이다. 책과 잡스러운 물건이야 어차피 이리저리 굴러다닐 거라 대충 풀어놓고, 제일 중요한 등사기와 종이 등 작업?도구 일체는 작은 방으로 보낸다. 이제 이곳은 생활공간이자 작업실이고 하룻밤에만 수천 장을 찍어낼 수 있는 공장이다.
이사 첫날 어찌 그냥 지날 것인가. 미리 사둔 막걸리와 새우깡을 꺼낸다. 국물이 흘러내려 냄새를 풍기는 통에서 김치를 내니 그럴듯한 술상이 차려졌다. 늦었지만 축하는 해야지. 시간도 그렇고 힘도 좀 썼던 터라 출출한 터다. 두부가 좀 아쉽지만 맛나게 들이킨 한 잔에 허기를 달랜다. 쓰러지듯 잠자리에 든 하루는 정말 길었다.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듯 새벽을 알리는 홰치는 소리가 밤하늘을 가른다. 연거푸 몇 차례 울어대니 강아지들도 덩달아 소란스럽다. 비몽사몽 어떻게든 잠자리를 지키려 뒤척여 보는데, 쿵쾅쿵쾅 요란스럽게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누구여?-
-나여, 빨리 일어나, 물뜨러 가야지-
-벌써? 몇신디?- 엘러펀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