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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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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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글 이영훈 지도위원


82년 대학풍경은 썰렁했다. 속을 들여다보면 어둠에 갇힌 깜깜함이 전부였다. 동아리도 그렇고 학도호국단도 그렇고. 교내엔 영어잡지를 들고 다니는 사복형사(소위 ‘짭새’라고 불렀다)나 정보원들이 득실거렸다. 학생을 보호할 학생처 교직원들마저 정보형사들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을 때였다. 군사독재의 서슬 퍼런 칼날이 춤추던 시절이었다.

83년 가을쯤 일게다. 쌀패와 흥사단 등 동아리 5곳과 연합으로 교내집회를 마련했다. 80년 이후로 무거운 침묵에 가라앉았던 원광대에서의 첫 집회다. 준비하는 과정도 어려웠지만 수덕호(호수)를 도는 내내 함께 부를 노래가 마땅치 않았다. 찬송가나 군가 개사곡이 나오고 하다못해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그나마 제일 와 닿았던 것은 아침이슬이었다. 


80년 5월 광주를 갓 지난 엄혹한 시절, 시위와 집회가 있을 때마다 민주화의 열망을 담아 부를 노래가 마땅치 않았다. 70년대도 그랬다. 문화역량이랄까 특히, 노래가 많이 아쉬웠다. 80년대 들어 청년 학생들의 민주화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아침이슬은 7-80년대를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다. 이후 각 대학마다 노래패가 만들어지고 민중노래가 쏟아져 나오면서 노래에 대한 궁핍함은 나아졌지만 그래도 아침이슬은 언제나 중심에 있었다. 절정은 87년 6월 항쟁이었다. 아침이슬과 임을 위한 행진곡이 100만 군중에 의해 불러지는 장관을 상상해보라. 


아침이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상록수가 있었고, 아름다운 사람, 식구생각, 두리번거린다, 늙은 군인의 노래, 친구 등 그가 쓴 주옥같은 곡들이 아름아름 알려지며 불려졌다. 많은 이들의 애창곡으로 사랑을 받았다. 가사 대부분이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주옥같은 내용이었다. 

작곡가 의도와 관계없이 시대의 중심으로 이끌린 노래들로 인해 김민기는 고난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는 탓을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다. 


‘뒷것’을 자처했던 그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무대 중앙이 아니라 그늘진 뒤편에서 무대를 빛내는 조력자로서 역할에 만족했다. 그의 삶 자체가 그랬다. 

군대를 다녀온 후 야학을 시작으로 인천부평의 공장에서 일하고 연천에서 농사를 짓고 탄광에서 일하는 등 사회의 약자와 어려운 사람들 속에 자신을 두었다. 노랫말과 작곡 대부분이 그렇게 탄생했기에 그의 노래에는 잔잔한 힘이 있었다. 부를수록 와 닿았던 노래들.


91년 개관한 ‘학전’은 그 결정체였다. 

설경구, 황정민, 장현성 등 많은 배우들이 지하철1호선으로 대표되는 락 뮤지컬을 통해 성장했다. 김광석과 윤도현 등 당대를 대표하는 가수들이 ‘학전’을 통해 성장하고 이름을 알렸다. “못자리 농사를 짓는 곳”이란 그의 말처럼 ‘학전’은 빈약한 대중문화예술에 싹을 키우며 큰 족적을 남겼다.

그들이 대중문화의 주류를 형성하며 잘 나갈 때 ‘학전’은 경영난에 시달리며 큰 어려움에 처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집을 담보로 잡을 정도의 심각한 상황에서도 ‘학전’을 통해 성장한 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다. “잘 되면 얼른 나가. 뒤돌아보지 말고.” 


자본의 논리는 문화예술계도 예외가 아니다. 돈이 되는 지하철1호선을 중단하고 돈이 되지 않는 어린이극을 2004년부터 지속하면서 경영난은 더욱 악화되었다. 어쩌면 병은 그렇게 서서히 찾아왔을 것이다. 많은 이들을 꽃피우면서 정작, 자신은 낮은 곳에서 외로이 시들어갔던 삶이기에, 그를 떠나보내는 마음은 더 착잡하고 애틋하다. 그의 땀과 노력을 가져다 즐기기만 했지 손 한번 내밀지 못한 미안함이 크다. 그는 많은 이들이 부르는 노래조차 저작권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고 누군가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탓하지 않았다고 한다. 


2020년 경북도와 울릉군이 섬의 날을 맞이하여 김민기의 ‘내 나라 내 겨레’ 노래비를 세웠다. 2021년에는 ‘아침이슬’ 50주년을 맞아 강북구에서 국립4.19묘지 앞에 노래비를 세웠다. 그가 떠난 지금, 김민기를 만나고 그의 노래를 들으며 그를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그가 태어난 익산에 마련되기를 바란다.

50년이 지났지만, 그의 노래는 여전히 빛이 난다.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김민기선생님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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