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을 쫓는 아이
이영훈 지도위원
“네가 거짓말을 하면 너는 진실에 대한 누군가의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누군가를 속이면 정당함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알겠니?”
바바가 아미르에게 힘주어 했던 말이다.
아세프의 하산에 대한 끔찍한 폭력을 숨어서 무력하게 지켜보던 아미르와 하산의 관계는 이후 모든 것이 변해갔다. 아미르의 방관과 거짓, 모함이 만들어낸 사건 앞에서 하산은 침묵으로 아미르에 대한 의리를 다하지만 결국, 함께 자라온 집을 떠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도련님과 하인이면서 친구로 자랐던 둘의 관계는 끝난 것이다. 아미르는 자책과 죄책감을 뒤로 하고 미국으로 가서 새로운 삶을 만난다. 소련의 침공과 탈레반에 이르는 아프카니스탄의 암울한 변화 속에서 하산은 무력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삶의 의지를 드러내고, 변함없는 헌신과 의리를 간직한 채 부인과 자식에게도 그 마음을 전한다.
두꺼운 분량에도 순식간에 읽히는 소설 ‘연을 쫓는 아이’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번이라도......”
아미르를 향한 하산의 지극한 표현은 바바를 향한 알리의 마음이기도 하다. 또한 탈레반 지배하의 카불에 놓여있는 하산의 아들이자 자신의 이복형제 조카인 소랍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경계를 넘다 마주친 아세프와의 처절한 투쟁을 통해 확인한 아미르의 마음이다. 방관에서 투쟁으로 변한 아미르의 모습 속에서 그 용기는 참으로 대단하게 보인다. 다시 “선할 수 있는 기회”는 열려있고, 누구에게나 속죄의 기회는 온다지만 당당히 맞서기는 쉽지 않아서이다.
소중한 사람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천번이라도’ 해주고픈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이복형제이면서 그 사실을 모른 채 도련님과 하인으로 살았던 아미르와 하산은 ‘파쉬툰인’과 ‘하자리인’이라는 인종차별과 신분격차의 굴레속에서 친구이면서 친구일 수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바바의 외도와 이를 묵인한 알리의 행위도 품위와 체통을 중시하는 전통과 문화만으로는 수긍하기 어렵지 않을까. 아미르와 하산이 이복형제라는 진실은 당사자인 두 사람에게 너무도 중요한 진실이지만 부모인 바바와 알리는 끝까지 감추는데,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바바의 말처럼 진실을 감추는 것은 그것에 대한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기 때문이다.
바바와 알리가 진실을 감춘 것처럼, 아미르와 하산이 아세프의 폭력사건을 감춘 것도 둘의 관계만큼이나 닮아있다. 가해와 희생의 사이, 불우한 환경과 유복한 환경의 차이, 잘못을 덮는 것과 그것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차이, 폭력의 대물림과 그 폭력을 끊어낼 수 있는 작은 희망 따위 등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아미르의 처지와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다려주고 받아주고 때론 북돋아 주는 ‘라임칸’의 역할은 아미르에게 부족한 관심과 사랑을 채워준다. 엄마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는 아미르에게 아빠 바바는 엄격하고 멀게만 보이는데 그나마 친구같은 라임칸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냐 싶다. 어려울 때, 답답할 때, 속에 맺힌 것을 털어내진 않더라도, 얼굴만 보아도 힘이 되는 ‘라임칸’이 곁에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당신은 언제나 관광객이었다.”
소랍을 찾아 카불로 가는 중에 택시기사 파미르가 아프카니스탄 서민의 참상을 두고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현실감이 없다는 아미르에게 던진 말이다. 바바로 대표되는 부유층과 장군출신인 타헤르로 대표되는 지배층을 빗댄 말이리라. 엄혹한 현실을 눈앞에 둔 우리에게도 생각을 주는 지점이고.
참고로 아프카니스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7세기부터 이슬람영향을 받았던 아프카니스탄은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열강의 침탈을 받았고 191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79년 소련의 침공으로 10년 전쟁을 겪고, 이후 권력을 차지하려는 내전이 진행되다가 96년 창설한 탈레반이 권력을 잡는다. 9.11 테러 이후, 2001년 미국의 침공으로 20년 가까이 지배를 받다가 21년에야 탈레반에 권력을 내주고 미군이 철수한다. 소련침공부터 시작된 50년 가까운 전쟁이 끝났다. 하지만 극단의 이슬람을 추구하는 탈레반으로 인해 여성들의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교육과 공공기관에서 퇴출당하고 외출조차 자유로이 다닐 수 없는 여성들의 억압된 현실은 봉건적 신분제와 가부장제, 그리고 이슬람교리의 극단적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여성들의 냉혹한 현실과 고통을 담은 두 번째 소설이 ‘할레드 호세이니’의 두 번째 작품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다. 도서관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십수 년 전에 읽었던 때와는 또 다른 감동과 생각이 이어져 너무 좋았다.
헌정과 법치가 흔들리고 민주주의가 위태로운 지금 산불까지 난리고 보니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힘을 내고 희망을 만들어가야겠지요.
“삶은 계속되고 봄은 온다.”

연을 쫓는 아이
이영훈 지도위원
“네가 거짓말을 하면 너는 진실에 대한 누군가의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누군가를 속이면 정당함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알겠니?”
바바가 아미르에게 힘주어 했던 말이다.
아세프의 하산에 대한 끔찍한 폭력을 숨어서 무력하게 지켜보던 아미르와 하산의 관계는 이후 모든 것이 변해갔다. 아미르의 방관과 거짓, 모함이 만들어낸 사건 앞에서 하산은 침묵으로 아미르에 대한 의리를 다하지만 결국, 함께 자라온 집을 떠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도련님과 하인이면서 친구로 자랐던 둘의 관계는 끝난 것이다. 아미르는 자책과 죄책감을 뒤로 하고 미국으로 가서 새로운 삶을 만난다. 소련의 침공과 탈레반에 이르는 아프카니스탄의 암울한 변화 속에서 하산은 무력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삶의 의지를 드러내고, 변함없는 헌신과 의리를 간직한 채 부인과 자식에게도 그 마음을 전한다.
두꺼운 분량에도 순식간에 읽히는 소설 ‘연을 쫓는 아이’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번이라도......”
아미르를 향한 하산의 지극한 표현은 바바를 향한 알리의 마음이기도 하다. 또한 탈레반 지배하의 카불에 놓여있는 하산의 아들이자 자신의 이복형제 조카인 소랍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경계를 넘다 마주친 아세프와의 처절한 투쟁을 통해 확인한 아미르의 마음이다. 방관에서 투쟁으로 변한 아미르의 모습 속에서 그 용기는 참으로 대단하게 보인다. 다시 “선할 수 있는 기회”는 열려있고, 누구에게나 속죄의 기회는 온다지만 당당히 맞서기는 쉽지 않아서이다.
소중한 사람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천번이라도’ 해주고픈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이복형제이면서 그 사실을 모른 채 도련님과 하인으로 살았던 아미르와 하산은 ‘파쉬툰인’과 ‘하자리인’이라는 인종차별과 신분격차의 굴레속에서 친구이면서 친구일 수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바바의 외도와 이를 묵인한 알리의 행위도 품위와 체통을 중시하는 전통과 문화만으로는 수긍하기 어렵지 않을까. 아미르와 하산이 이복형제라는 진실은 당사자인 두 사람에게 너무도 중요한 진실이지만 부모인 바바와 알리는 끝까지 감추는데,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바바의 말처럼 진실을 감추는 것은 그것에 대한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기 때문이다.
바바와 알리가 진실을 감춘 것처럼, 아미르와 하산이 아세프의 폭력사건을 감춘 것도 둘의 관계만큼이나 닮아있다. 가해와 희생의 사이, 불우한 환경과 유복한 환경의 차이, 잘못을 덮는 것과 그것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차이, 폭력의 대물림과 그 폭력을 끊어낼 수 있는 작은 희망 따위 등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아미르의 처지와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다려주고 받아주고 때론 북돋아 주는 ‘라임칸’의 역할은 아미르에게 부족한 관심과 사랑을 채워준다. 엄마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는 아미르에게 아빠 바바는 엄격하고 멀게만 보이는데 그나마 친구같은 라임칸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냐 싶다. 어려울 때, 답답할 때, 속에 맺힌 것을 털어내진 않더라도, 얼굴만 보아도 힘이 되는 ‘라임칸’이 곁에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당신은 언제나 관광객이었다.”
소랍을 찾아 카불로 가는 중에 택시기사 파미르가 아프카니스탄 서민의 참상을 두고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현실감이 없다는 아미르에게 던진 말이다. 바바로 대표되는 부유층과 장군출신인 타헤르로 대표되는 지배층을 빗댄 말이리라. 엄혹한 현실을 눈앞에 둔 우리에게도 생각을 주는 지점이고.
참고로 아프카니스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7세기부터 이슬람영향을 받았던 아프카니스탄은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열강의 침탈을 받았고 191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79년 소련의 침공으로 10년 전쟁을 겪고, 이후 권력을 차지하려는 내전이 진행되다가 96년 창설한 탈레반이 권력을 잡는다. 9.11 테러 이후, 2001년 미국의 침공으로 20년 가까이 지배를 받다가 21년에야 탈레반에 권력을 내주고 미군이 철수한다. 소련침공부터 시작된 50년 가까운 전쟁이 끝났다. 하지만 극단의 이슬람을 추구하는 탈레반으로 인해 여성들의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교육과 공공기관에서 퇴출당하고 외출조차 자유로이 다닐 수 없는 여성들의 억압된 현실은 봉건적 신분제와 가부장제, 그리고 이슬람교리의 극단적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여성들의 냉혹한 현실과 고통을 담은 두 번째 소설이 ‘할레드 호세이니’의 두 번째 작품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다. 도서관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십수 년 전에 읽었던 때와는 또 다른 감동과 생각이 이어져 너무 좋았다.
헌정과 법치가 흔들리고 민주주의가 위태로운 지금 산불까지 난리고 보니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힘을 내고 희망을 만들어가야겠지요.
“삶은 계속되고 봄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