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위로 흐르는 삶
글 이영훈 익산참여연대 지도위원
가을이다.
푸르고 높아진 하늘. 선선한 날씨가 찾아들더니 울긋불긋 온 산이 단풍으로 물 든다. 가로수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고 활엽수 잎들이 붉어지는 이때가 가을의 멋을 가장 많이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산과 들 곳곳으로 사람들이 몰린다. 나무와 숲,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려는 사람들 스스로도 울긋불긋 옷차림으로 단풍이다.
가을단풍은 시간을 알린다.
이제 곧 겨울이 온다고.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있다고. 비우고 떨구고 온몸으로 버티며 새 봄을 기다리며 겨울의 시련을 이겨내야 하는 시간.
나무에 단풍이 드는 것은 엄혹한 겨울을 나야하는 생존의 과정이다. 기온이 떨어지고 건조해지기 시작하면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아는 나무는 광합성이 여의치 않음을 알고 단풍을 거쳐 잎을 떨군다. 잎이 떨어진 줄기 끝에는 겨울눈이 있어 따사로운 봄 햇살이 비추면 새싹이 되고 줄기가 되고 꽃이 된다.
단풍은 그렇게 화사한 듯 자신을 태우고 낙엽이 되어 또 다른 생명의 바탕이 된다. 또 다른 날을 준비하는 지금은 고귀한 희생과 인내, 기다림의 시간이다.
나무는 단풍을 만들고 잎을 떨궈 겨울을 준비하고, 사람은 두터운 옷으로 몸을 감싸 겨울을 난다. 방법은 다르지만 나무가 계절을 나듯이, 나무의 계절을 즐기는 사람도 계절을 난다. 그렇게 가을은 시간으로 흐른다.
단풍과 낙엽으로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처럼 사람도 겨울을 준비한다.
예전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가지고 사람의 일생에 비추어 비유하곤 했다.
가을이면 사람의 일생에서 어디쯤일까? 태어나서 걷고 사물을 배우고 관계를 형성하며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에 진출하는 청년쯤 되는 시점을 봄이라 하지 않을까싶다. 목표와 가치를 향해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열정과 노력으로 하나씩 이루어가는 시절을 여름이라 치면 중년쯤 되지 않을까. 그럼 가을은......
(여러분은 어디쯤 지나고 있나요?)
내 인생에 가을은 어디쯤일까.
밤과 대추, 감이 풍성하게 열리는 것처럼 자식들 다 커서 시집장가 보내는 나이쯤 되면 가을이지 않을까. 퇴직 앞두고 막막한 노년 걱정하는 나이는 왠지 겨울을 앞둔 가을에 꼭 맞는 느낌이다.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가끔 친구이름도 바로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 있다. 마음은 저 만치 달리고 있는데 몸은 굼뜨고 심장이 헐떡이는 순간도 그렇고, 거뜬히 잘 넘겼던 찬바람에 일찌감치 두터운 옷을 챙기는 순간도 그렇고, 몸 이곳저곳 잔병치례로 먹는 알약수가 늘어가는 때 우리 삶에도 단풍이 들고 있음이다.
가을은 그렇게 내 몸에도 삶에도 시간에도 울긋불긋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제는 겨울을 준비할 때다.
나락을 베고 정돈된 논처럼 깨끗이 비우지는 못할 지라도, 낙엽 떨구는 나무처럼 온갖 군더더기가 쌓인 삶도 내려놓아야 할 것이 많다. 무겁게 지고 왔던 것들을 내려놔야 한다. 생활에서, 관계에서, 마음에서, 기억에서, 과거에서.
가벼울수록 좋은 때가 있다면 가을이 그렇다. 놓아야 할 때 놓지 못하면 더 큰 고뇌와 고통이 따른다. 욕심과 집착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야 편한 때가 따로 있는 게 아니지만 가을에는 그래야 할 거 같다. 다가오는 겨울을 위해. 사랑하는 내 삶을 위해.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의 삶은 단순하다. 깊을수록 간단명료하다. 이치와 순리를 아는 삶은 복잡하지 않고 물 흐르듯 단순하다. 막히지 않고 모든 것으로 통하는 삶은 언제나 가능할까.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살아생전에......
쌀값 폭락으로 시름 깊은 농부들. 푸르밀의 사업종료와 해고통보로 날벼락을 맞은 낙농가와 노동자들. 무단폐기물이 해결되지 않아 고통받는 낭산주민들. 좋은 일자리와 인프라 부족으로 미래를 걱정하는 청년들. 코로나에 겹쳐 경제불안과 금리인상으로 어려워진 상공인과 서민들을 생각하면 한가하게 가을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이 좀 민망하다.
떨궈진 낙엽이 거름이 되고 다른 나무와 숲의 생명이 되듯이 우리의 삶도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된다. 그렇게 맺히고 풀면서 흘러온 시간으로 물든 단풍이고 가을이다. 저 단풍의 화려함만큼은 아니지만 이름 모를 들꽃이었거나 그냥 들풀이었거나 한 시대를 수놓았던 사람들의 시간도 단풍과 함께 가을을 지난다.
가을위로 흐르는 삶
글 이영훈 익산참여연대 지도위원
가을이다.
푸르고 높아진 하늘. 선선한 날씨가 찾아들더니 울긋불긋 온 산이 단풍으로 물 든다. 가로수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고 활엽수 잎들이 붉어지는 이때가 가을의 멋을 가장 많이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산과 들 곳곳으로 사람들이 몰린다. 나무와 숲,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려는 사람들 스스로도 울긋불긋 옷차림으로 단풍이다.
가을단풍은 시간을 알린다.
이제 곧 겨울이 온다고.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있다고. 비우고 떨구고 온몸으로 버티며 새 봄을 기다리며 겨울의 시련을 이겨내야 하는 시간.
나무에 단풍이 드는 것은 엄혹한 겨울을 나야하는 생존의 과정이다. 기온이 떨어지고 건조해지기 시작하면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아는 나무는 광합성이 여의치 않음을 알고 단풍을 거쳐 잎을 떨군다. 잎이 떨어진 줄기 끝에는 겨울눈이 있어 따사로운 봄 햇살이 비추면 새싹이 되고 줄기가 되고 꽃이 된다.
단풍은 그렇게 화사한 듯 자신을 태우고 낙엽이 되어 또 다른 생명의 바탕이 된다. 또 다른 날을 준비하는 지금은 고귀한 희생과 인내, 기다림의 시간이다.
나무는 단풍을 만들고 잎을 떨궈 겨울을 준비하고, 사람은 두터운 옷으로 몸을 감싸 겨울을 난다. 방법은 다르지만 나무가 계절을 나듯이, 나무의 계절을 즐기는 사람도 계절을 난다. 그렇게 가을은 시간으로 흐른다.
단풍과 낙엽으로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처럼 사람도 겨울을 준비한다.
예전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가지고 사람의 일생에 비추어 비유하곤 했다.
가을이면 사람의 일생에서 어디쯤일까? 태어나서 걷고 사물을 배우고 관계를 형성하며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에 진출하는 청년쯤 되는 시점을 봄이라 하지 않을까싶다. 목표와 가치를 향해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열정과 노력으로 하나씩 이루어가는 시절을 여름이라 치면 중년쯤 되지 않을까. 그럼 가을은......
(여러분은 어디쯤 지나고 있나요?)
내 인생에 가을은 어디쯤일까.
밤과 대추, 감이 풍성하게 열리는 것처럼 자식들 다 커서 시집장가 보내는 나이쯤 되면 가을이지 않을까. 퇴직 앞두고 막막한 노년 걱정하는 나이는 왠지 겨울을 앞둔 가을에 꼭 맞는 느낌이다.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가끔 친구이름도 바로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 있다. 마음은 저 만치 달리고 있는데 몸은 굼뜨고 심장이 헐떡이는 순간도 그렇고, 거뜬히 잘 넘겼던 찬바람에 일찌감치 두터운 옷을 챙기는 순간도 그렇고, 몸 이곳저곳 잔병치례로 먹는 알약수가 늘어가는 때 우리 삶에도 단풍이 들고 있음이다.
가을은 그렇게 내 몸에도 삶에도 시간에도 울긋불긋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제는 겨울을 준비할 때다.
나락을 베고 정돈된 논처럼 깨끗이 비우지는 못할 지라도, 낙엽 떨구는 나무처럼 온갖 군더더기가 쌓인 삶도 내려놓아야 할 것이 많다. 무겁게 지고 왔던 것들을 내려놔야 한다. 생활에서, 관계에서, 마음에서, 기억에서, 과거에서.
가벼울수록 좋은 때가 있다면 가을이 그렇다. 놓아야 할 때 놓지 못하면 더 큰 고뇌와 고통이 따른다. 욕심과 집착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야 편한 때가 따로 있는 게 아니지만 가을에는 그래야 할 거 같다. 다가오는 겨울을 위해. 사랑하는 내 삶을 위해.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의 삶은 단순하다. 깊을수록 간단명료하다. 이치와 순리를 아는 삶은 복잡하지 않고 물 흐르듯 단순하다. 막히지 않고 모든 것으로 통하는 삶은 언제나 가능할까.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살아생전에......
쌀값 폭락으로 시름 깊은 농부들. 푸르밀의 사업종료와 해고통보로 날벼락을 맞은 낙농가와 노동자들. 무단폐기물이 해결되지 않아 고통받는 낭산주민들. 좋은 일자리와 인프라 부족으로 미래를 걱정하는 청년들. 코로나에 겹쳐 경제불안과 금리인상으로 어려워진 상공인과 서민들을 생각하면 한가하게 가을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이 좀 민망하다.
떨궈진 낙엽이 거름이 되고 다른 나무와 숲의 생명이 되듯이 우리의 삶도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된다. 그렇게 맺히고 풀면서 흘러온 시간으로 물든 단풍이고 가을이다. 저 단풍의 화려함만큼은 아니지만 이름 모를 들꽃이었거나 그냥 들풀이었거나 한 시대를 수놓았던 사람들의 시간도 단풍과 함께 가을을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