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산 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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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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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산 종주



글 이영훈 익산참여연대 지도위원



저녁부턴 비도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니, 지금의 구름은 앞으로 다가올 비구름의 전령쯤 될 것이다. 아직은 밝은 회색 구름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환해지는 하늘 사이로 어디쯤에선가 부지런히 올라오고 있을 일출을 기대하며, 산자락 너머로 번져가는 여명의 빛을 좇아 달리는 속도를 조금씩 줄여본다. 멋지게 올라오는 일출은 아니지만 구름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나타난 해님을 반기며 한적한 고속도로를 달린다. 도착지는 산청 덕만주차장이다.



딱히 언제부터 산을 좋아했는지는 모른다. 어렸을 때 지리산 자락에서 살았던 추억이 전부랄까. 20대 들어서 산을 타기 시작했고 대부분 지리산으로 달렸다. 어떨 땐 한 달에 두세 번 다니기도 하고...지금도 그렇지만 지리산만 가면 마음이 편했다. 



익산참여연대에 앞서 ‘갈숲산악회’가 만들어지면서는 아예 ‘신년일출’을 해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맞이했다. 십몇 년을 그렇게 보냈다. 세월도 가고 사람도 바뀌면서 미륵산에서 신년일출을 맞이하다가 이제 이마저도 중단된 상태다. 숲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데 무심히 흐르는 시간 속에 갈숲회원 하나 둘 떠나갔다. 돌아보건대 ‘갈숲’ 30년이 담고 있는 기억과 무게는 거쳐 간 이들의 세월만큼이나 풍성하게 느껴진다. 



철쭉과 억새로 유명한 황매산이 오늘 산행에서 만날 주인공이다. ‘갈숲’을 통해 두세 번은 갔을 것이다. 오늘은 황매산을 크게 한 바퀴 도는 산행이다. 바위와 암석으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니 마음이 동해 나선 길이다. 합천과 산청에서 접근이 가능한데 앞선 이들의 추천이 많은 산청쪽 덕만주차장에서 시작해보기로 정했다. 코스는 덕만주차장-순결바위-모산재-철쭉군락지-산불감시초소-황매산 정상(1113m)-삼봉-상봉-산성-박덤-덕만주차장으로 약 12km쯤 되는 구간이다.



산을 좋아해서 산악회를 통한 산행은 물론 혼자서도 종종 산을 찾는다. 매주 틈나는 대로 가는 미륵산도 좋아하지만 좀 더 크고 길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산을 찾아 나서는 ‘혼산’을 즐겨한다. 처지와 환경에 따라 느낌이 다르듯이 산도 그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침의 산과 저녁의 산이 다르듯이 변해가는 세월만큼 감성도 느낌도 다르다. 그래서 매번 새롭다. 



시작부터 급경사에 바위가 상당하다. 계단식으로 조성된 오르막을 지나 암릉구간이 시작될 즘 갑자기 길이 사라지고 급격한 내리막을 만났다. 순간 멈칫거리며 이게 돌아가는 길인지 아니면 다른 길로 해서 오르는 길인지 짚어본다. 길을 잘못 들었다. 좀 더 천천히 살피며 가야 한다. 



서서히 심장을 달구고 땀이 배어날 즈음이면 몸이 반응을 한다. 심장이 거칠게 박동하는 것을 헤아리면서 들숨 날숨에 발걸음으로 박자를 맞춰주면 이번 산행도 무탈하게 진행될 것이다. 



모산재의 독특함에 얼핏 노고단이 떠오르긴 했으나 그하곤 또 다르다. 노고단 하면 돌탑이 상징이듯이 모산재에도 돌탑이 반쯤 쌓여있고 그 위로 마치 몇 개의 솟대를 모아놓은 것처럼 나뭇가지들이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다. 어떤 의미일까. 



모산재 앞뒤로 이어지는 암벽 구간은 자칫 길을 놓치기 쉬울 정도로 안내도 표시도 없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산객이 없어 길을 잘 찾아가며 가야 했다. 암릉 구간을 한참 지나 철쭉군락지에 들어서니 철쭉을 찾은 많은 이들로 북적인다. 



흐릿한 하늘은 구름인 듯 안개인 듯 채색된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그 아래로 높고 낮은 산자락이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길게 누워있고 산자락 앞으로 구불구불 연결된 숲길이 하얀 핏줄인 양 여러 갈래로 뻗어있다. 길옆으론 어른 키 높이로 자란 철쭉이 아래로는 푸르른 잎으로 채워지고 위로는 밝은 분홍의 꽃망울로 채색된 숲을 이루며 넓은 구릉을 덮었다. 억새로 뒤덮일 위쪽 구릉은 가을에나 보자는 듯 연한 황토색으로 바람에 흔들렸다.



서둘러 봄을 맞이한 곳에서는 철쭉도 꽃이고 사람도 꽃이다. 울긋불긋 꽃밭을 뒤로하고 황매산 정상에 이른다. 대부분 여기서 돌아가는데 종주를 하려면 온 만큼 가야 한다. 삼봉(세 개의 봉우리)을 지나 상봉쯤 가서는 아예 인적이 없다. 


일순 걸음 위로 잿빛 구름이 둥그렇게 모이면서 곧 비를 뿌릴 것처럼 분위기가 어두워지고 바람이 거세지면 마음도 바빠지면서 발걸음에 힘이 실린다. 그렇게 적막한 능선 숲길을 때론 바위를 타며 오르내리다 보면 지루한 침묵의 시간마저 잊힐 때쯤 멀리 도로가 보인다. 



운장산과 대둔산, 덕유산의 상고대와 눈꽃은 겨울 산의 백미를 보여줬고, 대금산의 진달래평원, 황매산 철쭉, 산청의 금잔디는 봄의 매력을, 지리산 천왕봉은 말할 필요가 없을 감동이고 구룡계곡은 계곡 트래킹과 폭포의 시원함을 보여주었다. 


미륵산 신년일출로 시작된 올해 산행의 발걸음은 낼 모래 지리산 종주를 앞두고 있다. 자연이 있어 반겨주는 산이 있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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