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 명예로워 질 때 농촌이 살아난다

익산참여연대
2022-06-17
조회수 1456

 

농민이 명예로워 질 때 농촌이 살아난다

 

유은미 함해국 대표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안된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가 아니다. 나의 자녀 또는 손자가 어느 날 대를 이어 농사를 짓겠다고 선포하게 되면 여느 가정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우리에게 농업은 이런 것이다.


고생스럽고 명예롭지 못한 직업.
필자가 2016년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연수를 다녀왔던 일정 중 가장 가슴에 남는 장면이 있다. 어느 작은 마을의 묘지에 갔는데(때에 따라 외국의 묘지는 마을 바로 옆에 있다) 한 묘비에 농부가 씨 뿌리는 장면과 글귀가 쓰여 있었다. 해설에 따르면 ‘묘지의 주인은 농부였고, 농부였음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내용이라고 하였다. ‘농부가 영광스러운 직업이었다니’ 충격이었다. 그 묘지를 둘러보고 해가 질 무렵 한 농가를 방문했는데 멀리서 작업을 마친 대형 트랙터가 흙먼지를 날리며 오고 있었다. 그 트랙터에는 아들인 젊은 청년과 손자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상기된 표정으로 웃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 모든 장면은 누가 이의제기할 것 없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함께 간 연수생이 농가 주인에게 질문을 했다. ‘자녀가 농사를 이어받는다고 했을 때 말리지는 않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 농가 주인은 ‘영광스러운 일을 이어받지 않을 이유가 있냐?’라며 되려 우리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연수생들은 낮은 탄성을 내뱉으며 농가 주인을 신비롭게 바라봤다. 그 순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신기한 존재인 우스꽝스러운 사이가 되었다.


이처럼 한국과 오스트리아 농부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국에서의 농업은 곧 가난이요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적 인식 때문일 것이다. 유럽은 농업직불금 즉 농민수당으로 삶의 질을 영위할 수 있다. 이것은 농촌에 살면서 어떤 가치를 실현할지, 어떠한 삶을 유지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우리는 농업을 산업의 한 분야로 보고 경제성을 유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는 제대로 바라봐 주지 않는다.


하물며 근래에는 농촌융복합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농민에게 가혹하리만큼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필자 역시 농업회사법인을 운영하고 있지만 젊은 나에게도 버겨운 일이다. 과연 ‘한국에서의 농업인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를 내가 농업회사를 운영하며 하고 있는 일 또는 했던 일을 기준으로 생각해봤다.


우선 1차적으로 농작물의 생산을 기본으로 가공 및 유통, 체험서비스, 농촌공간 디자인, 홍보와 마케팅, 농업관련 콘텐츠 제작, 지역문화 디자인, 축제기획 등 매우 다양한 역할을 숨가쁘게 수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농촌의 경관을 유지하고 식량 안보도 지켜내야 한다. 말도 안되게 다양하고 폭넓은 분야에 걸쳐 일을 해내고 있다. 필시 함해국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농업인 또는 농업인 경영체들에게 놓여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농촌에서 1인 다역을 하면서 하루종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느라 삶을 되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말이다. 그 어느 직업이 이 많은 전문 분야를 수행해 낼 수 있을까? 농민의 고상함을 유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살인적인 구조이다.


다시 되묻고 싶다.
내 자녀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농업을 한다고 하면 뭐라고 할 텐가? 나는 ‘안된다’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다. 모든 농업 정책이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제대로 반영해 줄 때까지 말이다. 1차 농산물을 생산하는 ‘절대농민’은 작물 생산에만 집중하고 그에 맞는 전문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 외에 가공, 체험, 서비스 등은 농업에서 파생된 전문 직업으로 육성해야 할 것이다. 농산물 가공전문가, 체험전문가, 가공품 패키지디자이너, 농촌문화 기획자 등의 다양한 역할을 세분화하여 농업에 관련된 영역들을 전문화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청년들이 농촌에 거주하며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되며 전문성을 인정받아 새로운 직업을 창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농촌에 다양한 직업 생태계가 형성되며 시끌벅적한 농촌이 유지될 수 있다.
가끔 농장에 있다 보면 사람을 보기 힘들 때가 있다. 조용하고 활기가 없다. 농촌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되돌아볼 때 묵과할 수 없는 현상이다. 농민이 명예로워질 때, 그때가 농촌의 활력이 되살아날 것이다.

 

 

- 이 글은 익산참여연대 참여와자치 98호 소식지 지역이야기에 실린글입니다.


익산참여연대


공동대표  황치화, 장시근

사업자등록번호  403-82-60163

주소 54616 전북 익산시 익산대로 307(모현동 1가)

이메일  ngoiksan@daum.net

대표전화  063-841-3025


ⓒ 2022 all rights reserved - 익산참여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