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많은자연을 향한 첫걸음, 왕궁에서 시작하다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소장
파리협약 이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전 세계의 정치·경제 전환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에너지 전환이 정치화되면서 대응 속도는 종종 빨라지기도, 때로는 느려지기도 하지만 방향과 경향성만큼은 분명해졌습니다. 파리협약 이후 잰걸음으로 달려가는 흐름에 맞춰, 기후위기와 함께 ‘쌍둥이 위기’로 불리는 생물다양성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국제 협약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지구적 목표가 탄소중립이라면, 생물다양성 위기 극복을 위한 목표는 ‘더많은자연(Nature Positive)’입니다. ‘더많은자연’은 전 지구적으로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자연 훼손의 추세를 멈추고 되돌려, 2030년까지 가시적이고 측정 가능한 수준으로 자연을 복원하고, 2050년까지 자연의 완전한 회복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생물다양성의 위기, 인류의 위기
1970년부터 2020년까지 생물 개체군의 변화를 평가한 ‘지구생명지수(Living Planet Index)’는 평균 73% 하락했습니다. 지구상에 살던 생물의 2/3 이상이 지난 50년 동안 사라진 셈입니다. 생태계별로는 육상 69%, 담수 85%, 해양 56%가 감소했습니다. 이러한 감소의 원인은 종마다 다르지만, 핵심적으로는 서식지 훼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간 활동은 육지의 75%, 바다의 66%를 심각하게 변화시켰으며, 현재의 손실 속도가 유지될 경우 2050년까지 지구의 10% 미만만이 인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시 서식지 손실이 큰 규모로 발생했습니다. 풀씨행동연구소의 분석 결과, 지난 30년 동안 한국에서 753㎢의 산림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매일 축구장 10개 규모의 숲이 사라진 셈입니다.
문제는 서식지 손실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생태계에 기후변화가 영향을 미치며, 생태계 붕괴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IPCC에 따르면 기후로 인한 개체군의 멸종은 식물과 동물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조사된 종 중 47%는 연간 고온 기후의 증가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인류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꽃가루를 옮기는 벌과 같은 수분매개자의 감소로 인해 위협받고 있는 전 세계 작물 생산량의 경제적 가치는 최소 300조 원에서 최대 760조 원에 달합니다. 특히 자연에 기반한 경제활동을 할수록 토지 황폐화나 해안 서식지 상실로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트나 핸드폰 앱을 통해 장을 보고 식사하는 현대인도 평소에는 생태계와 괴리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자연이 제공하는 생태계 서비스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과 공기, 식량, 의약품과 같은 직접적 혜택은 물론, 탄소 흡수, 폭염 및 홍수 완화와 같은 간접적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는 더많은자연이 필요하다
생태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육지와 바다의 절반을 국립공원이나 해양보호구역 등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면 현생 종의 85%가 살아남을 수 있다”며 지구 절반을 보호지역으로 설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는 기후 보호 측면에서도 유리합니다. 연간 배출되는 30기가톤의 온실가스 중 약 1/3에 해당하는 10기가톤은 자연을 보호하고, 관리하고, 복원하는 자연기반해법을 통해 저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해법은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할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로 치솟는 기온의 최고점을 0.1도에서 0.3도까지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유럽연합은 자연을 보호하고 복원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를 2030 생물다양성 전략을 통해 제시하고, 이를 의무화하기 위해 ‘자연복원법(Nature Restoration Law)’을 진통 끝에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은 향후 기업의 생물다양성 공시제도와 대륙 간 무역 장벽으로도 연결될 예정입니다. 유럽연합의 2030 전략 수립 이후, 유엔 생물다양성협약은 ‘자연을 위한 파리협약’이라 불리는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를 채택했습니다. 2030년까지 육상과 해양의 30%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훼손지의 30%를 복원하며, 목표 달성을 위해 공공과 민간의 자금 흐름을 전환하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왕궁에서 시작하는 자연환경복원사업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에 따라 개별 국가들도 국가생물다양성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한국도 2023년 12월에 국가 전략을 의결하였으며, 육상 및 해양의 30%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훼손지를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실천목표 2번인 생태계 복원의 경우, 2027년까지 훼손지를 식별하고, 2030년까지 복원 우선지역의 30%에 대해 복원을 착수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에 따라 자연환경복원사업이 국가 선도 우선대상 시범사업지로 선정되어 추진 중입니다.
왕궁 정착농원에서 시작되는 환경부의 복원사업도 이러한 세계적·국가적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 지역은 과거 정부가 한센인을 강제로 이주시킨 후 국가적 관리가 미흡한 상태에서 축산업이 이루어지며 수질·토양오염, 악취 문제 등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0년부터 정부 차원의 대책이 수립되어 폐축사 매입과 환경복원이 점차 추진되어 왔습니다. 필자가 처음 왕궁 지역을 방문했을 당시, 심각한 악취 문제는 대부분 해소된 상태였습니다. 방문할 때마다 축사의 수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확인되며, 임시로 심어놓은 나무들도 제법 자라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왕궁에 어떤 복원이 필요할까
왕궁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게 될까요? 왕궁 복원을 둘러싼 여러 주체들은 서로 다른 비전을 그리고 있는 듯합니다. 환경부는 생태계 보전을 위한 자연환경복원사업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익산시와 전북도는 지역 사회 경제에 도움이 되는 개발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추진되느냐에 따라 사업 예산의 동원 주체도 달라집니다. 복원 중심의 사업이 되면 환경부가 적극적으로 예산을 투입하고 주도할 것이고, 지역 경제 개발이 중심이 된다면 익산시가 예산을 동원하고 사업을 추진하게 될 것입니다.
환경부, 전북도, 익산시가 합의한 청사진은 점차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생태축 복원, 탐방로 개발, 한센인 정착촌의 역사적 의미를 담은 기념관 등이 그것입니다. 또한 온실 정원, 생태교육 등의 복합 프로그램으로 지역 활성화에 성공한 영국 에덴 프로젝트를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다만, 에덴 프로젝트를 모델 삼아 지역 활성화를 시도했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예산 낭비에 그친 국내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길을 선택하든, 지금보다 왕궁의 자연이 더 복원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만큼은 분명합니다. 왕궁 자연환경복원사업을 통해 처음 의도했던 수많은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해답은 익산 지역사회에 달려 있습니다. 익산 시민들과 기업이 손잡고 왕궁에 나무를 심고, 새들을 위한 보호지역을 만드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왕궁 숲을 함께 돌보고, 복원되는 과정을 함께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익산참여연대 소식지 참여와자치 107호 기고글에 실렸습니다.
더많은자연을 향한 첫걸음, 왕궁에서 시작하다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소장
파리협약 이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전 세계의 정치·경제 전환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에너지 전환이 정치화되면서 대응 속도는 종종 빨라지기도, 때로는 느려지기도 하지만 방향과 경향성만큼은 분명해졌습니다. 파리협약 이후 잰걸음으로 달려가는 흐름에 맞춰, 기후위기와 함께 ‘쌍둥이 위기’로 불리는 생물다양성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국제 협약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지구적 목표가 탄소중립이라면, 생물다양성 위기 극복을 위한 목표는 ‘더많은자연(Nature Positive)’입니다. ‘더많은자연’은 전 지구적으로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자연 훼손의 추세를 멈추고 되돌려, 2030년까지 가시적이고 측정 가능한 수준으로 자연을 복원하고, 2050년까지 자연의 완전한 회복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생물다양성의 위기, 인류의 위기
1970년부터 2020년까지 생물 개체군의 변화를 평가한 ‘지구생명지수(Living Planet Index)’는 평균 73% 하락했습니다. 지구상에 살던 생물의 2/3 이상이 지난 50년 동안 사라진 셈입니다. 생태계별로는 육상 69%, 담수 85%, 해양 56%가 감소했습니다. 이러한 감소의 원인은 종마다 다르지만, 핵심적으로는 서식지 훼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간 활동은 육지의 75%, 바다의 66%를 심각하게 변화시켰으며, 현재의 손실 속도가 유지될 경우 2050년까지 지구의 10% 미만만이 인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시 서식지 손실이 큰 규모로 발생했습니다. 풀씨행동연구소의 분석 결과, 지난 30년 동안 한국에서 753㎢의 산림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매일 축구장 10개 규모의 숲이 사라진 셈입니다.
문제는 서식지 손실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생태계에 기후변화가 영향을 미치며, 생태계 붕괴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IPCC에 따르면 기후로 인한 개체군의 멸종은 식물과 동물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조사된 종 중 47%는 연간 고온 기후의 증가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인류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꽃가루를 옮기는 벌과 같은 수분매개자의 감소로 인해 위협받고 있는 전 세계 작물 생산량의 경제적 가치는 최소 300조 원에서 최대 760조 원에 달합니다. 특히 자연에 기반한 경제활동을 할수록 토지 황폐화나 해안 서식지 상실로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트나 핸드폰 앱을 통해 장을 보고 식사하는 현대인도 평소에는 생태계와 괴리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자연이 제공하는 생태계 서비스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과 공기, 식량, 의약품과 같은 직접적 혜택은 물론, 탄소 흡수, 폭염 및 홍수 완화와 같은 간접적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는 더많은자연이 필요하다
생태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육지와 바다의 절반을 국립공원이나 해양보호구역 등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면 현생 종의 85%가 살아남을 수 있다”며 지구 절반을 보호지역으로 설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는 기후 보호 측면에서도 유리합니다. 연간 배출되는 30기가톤의 온실가스 중 약 1/3에 해당하는 10기가톤은 자연을 보호하고, 관리하고, 복원하는 자연기반해법을 통해 저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해법은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할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로 치솟는 기온의 최고점을 0.1도에서 0.3도까지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유럽연합은 자연을 보호하고 복원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를 2030 생물다양성 전략을 통해 제시하고, 이를 의무화하기 위해 ‘자연복원법(Nature Restoration Law)’을 진통 끝에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은 향후 기업의 생물다양성 공시제도와 대륙 간 무역 장벽으로도 연결될 예정입니다. 유럽연합의 2030 전략 수립 이후, 유엔 생물다양성협약은 ‘자연을 위한 파리협약’이라 불리는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를 채택했습니다. 2030년까지 육상과 해양의 30%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훼손지의 30%를 복원하며, 목표 달성을 위해 공공과 민간의 자금 흐름을 전환하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왕궁에서 시작하는 자연환경복원사업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에 따라 개별 국가들도 국가생물다양성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한국도 2023년 12월에 국가 전략을 의결하였으며, 육상 및 해양의 30%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훼손지를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실천목표 2번인 생태계 복원의 경우, 2027년까지 훼손지를 식별하고, 2030년까지 복원 우선지역의 30%에 대해 복원을 착수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에 따라 자연환경복원사업이 국가 선도 우선대상 시범사업지로 선정되어 추진 중입니다.
왕궁 정착농원에서 시작되는 환경부의 복원사업도 이러한 세계적·국가적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 지역은 과거 정부가 한센인을 강제로 이주시킨 후 국가적 관리가 미흡한 상태에서 축산업이 이루어지며 수질·토양오염, 악취 문제 등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0년부터 정부 차원의 대책이 수립되어 폐축사 매입과 환경복원이 점차 추진되어 왔습니다. 필자가 처음 왕궁 지역을 방문했을 당시, 심각한 악취 문제는 대부분 해소된 상태였습니다. 방문할 때마다 축사의 수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확인되며, 임시로 심어놓은 나무들도 제법 자라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왕궁에 어떤 복원이 필요할까
왕궁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게 될까요? 왕궁 복원을 둘러싼 여러 주체들은 서로 다른 비전을 그리고 있는 듯합니다. 환경부는 생태계 보전을 위한 자연환경복원사업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익산시와 전북도는 지역 사회 경제에 도움이 되는 개발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추진되느냐에 따라 사업 예산의 동원 주체도 달라집니다. 복원 중심의 사업이 되면 환경부가 적극적으로 예산을 투입하고 주도할 것이고, 지역 경제 개발이 중심이 된다면 익산시가 예산을 동원하고 사업을 추진하게 될 것입니다.
환경부, 전북도, 익산시가 합의한 청사진은 점차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생태축 복원, 탐방로 개발, 한센인 정착촌의 역사적 의미를 담은 기념관 등이 그것입니다. 또한 온실 정원, 생태교육 등의 복합 프로그램으로 지역 활성화에 성공한 영국 에덴 프로젝트를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다만, 에덴 프로젝트를 모델 삼아 지역 활성화를 시도했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예산 낭비에 그친 국내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길을 선택하든, 지금보다 왕궁의 자연이 더 복원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만큼은 분명합니다. 왕궁 자연환경복원사업을 통해 처음 의도했던 수많은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해답은 익산 지역사회에 달려 있습니다. 익산 시민들과 기업이 손잡고 왕궁에 나무를 심고, 새들을 위한 보호지역을 만드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왕궁 숲을 함께 돌보고, 복원되는 과정을 함께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익산참여연대 소식지 참여와자치 107호 기고글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