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 익산참여연대로부터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싶다’는 연락이 왔다. 익산에 살지 않는 내가 이곳의 소식지에 글을 써도 되나 싶었지만 '익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청년,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되겠다 싶어 마음을 먹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글이 정리가 안 돼 몇 번이나 글을 쓰고 고쳤는지 모른다. 수정을 거친 뒤 비로소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어쩌면 익산에 거주하고 있는 내 부모님에게도 말한 적 없었던, 하지 못했던 서른 다섯의 내 이야기다.
어릴 적 꿈꾸던 30대는 '내 명의의 아파트'에 거주하며 '자차'로 출근하고 여가 생활을 즐기는 '커리어 우먼'.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임차인'으로 빌라에 살며 '지하철과 버스'로 출퇴근을 하고 여가 생활을 즐기는 날보다 일에 치여 사는 일이 많은 '직장인1'. 내가 꿈꾸던 것과 달리 현실의 30대는 절대 녹록지 않았다.
30대가 되니 결혼의 여부로 친구가 나뉘었다. 결혼해 가정을 꾸렸거나, 언젠가는 결혼을 할 예정이거나, '비혼'(미혼과 비혼은 엄연히 다르다)인 친구. 보통 고향인 익산에 살거나 지방에 거주하는 친구들이 이른 나이에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고 서울에서 직장을 잡은 친구들은 대부분 나처럼 결혼하지 않은 상태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며 '언제 시집갈래?'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결혼 생각이 없다'고 대답하면 '연애를 해 봐라', '결혼하면 달라질 거다'는 말들을 줄줄 쏟아붓는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안에선 감성과 이성이 충돌한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적으로 다시 생각해보면 20대 중반에 '결혼해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20대 후반까지 약 5년간 나는 방송국의 비정규직 피디로 일했는데 일하는 만큼 내 능력만큼 돈을 벌 수 있어 크게 불만은 없었다. 젊은 남녀가 모여 있는 곳이었기에 축하할 일도 많았다. 하지만 한 여자 선배의 결혼이 계기가 됐다. 결혼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됐는데 임신과 육아가 문제였던 거다. 프리랜서였기에 휴가가 따로 없어 아이를 낳고 기르려면 일을 그만둬야 했다. 옆에 있는 남자 선배는 아이가 커갈수록 일에 더 매진했는데 여자 선배는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둬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래서 이직을 결심했다. 혹시 모를 내 삶에서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가 내 발목을 붙잡지 않도록 '정규직' 일자리를 갖자고. 하고 싶은 일을 그만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택했던 건 어쩌면 내 인생에 결혼과 출산이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는 애매모호함 때문이었다.
연차가 10년을 넘기면서 삶에 대한 가치관이 분명해졌다. 내 인생에 결혼이 꼭 필요한가? 답은 '아니'었다. 혹자는 이런 내게 '편협한 생각이다' 할 수도 있지만 내겐 결혼이 필요하지 않다. 내게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주거'와 '일'. 고단한 하루 끝에 휴식할 집과 오랜 시간 나의 생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줄 직장이 필요한 거지, 결혼이라는 제도와 배우자가 필요하지 않다. 육아 역시 남의 이야기일 뿐. 혹시 모를 결혼과 육아 때문에 정규직 일자리를 소원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연차가 늘어갈수록 내 인생에서 결혼이란 단어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나 혼자 산다고 꿈꾸는 미래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나와 더 친밀해지고 싶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배우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늘리고 싶다. 결혼이라는 건 개인과 개인의 만남에 그치는 게 아니라 가족 간의 결합이기에 챙길 일도 많고, 자녀가 생긴다면 그에 대한 책임감 또한 늘어난다. 그런 것에 내 삶을 소모하는 것 대신 나 자신을 살피는 삶을 살고 싶은 것뿐이다.
나는 지금의 내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삶을 완성하기 위한 그림을 천천히 그리고 있는 중이다. 부모 세대가 보기에 이런 내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부모가 갔던 길들을 자녀가 꼭 뒤따라갈 필요가 있을까? 인생에서 가장 큰 가치를 다름 아닌 '나' 자신에게 두고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나와 같은 청년을 본다면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보편적인 삶이 아닌 새로운 삶을 만들려는 그들을 응원해 주길 바란다.
서른 다섯 이야기
박서영(35세) 직장인, 서울
열흘 전 익산참여연대로부터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싶다’는 연락이 왔다. 익산에 살지 않는 내가 이곳의 소식지에 글을 써도 되나 싶었지만 '익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청년,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되겠다 싶어 마음을 먹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글이 정리가 안 돼 몇 번이나 글을 쓰고 고쳤는지 모른다. 수정을 거친 뒤 비로소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어쩌면 익산에 거주하고 있는 내 부모님에게도 말한 적 없었던, 하지 못했던 서른 다섯의 내 이야기다.
어릴 적 꿈꾸던 30대는 '내 명의의 아파트'에 거주하며 '자차'로 출근하고 여가 생활을 즐기는 '커리어 우먼'.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임차인'으로 빌라에 살며 '지하철과 버스'로 출퇴근을 하고 여가 생활을 즐기는 날보다 일에 치여 사는 일이 많은 '직장인1'. 내가 꿈꾸던 것과 달리 현실의 30대는 절대 녹록지 않았다.
30대가 되니 결혼의 여부로 친구가 나뉘었다. 결혼해 가정을 꾸렸거나, 언젠가는 결혼을 할 예정이거나, '비혼'(미혼과 비혼은 엄연히 다르다)인 친구. 보통 고향인 익산에 살거나 지방에 거주하는 친구들이 이른 나이에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고 서울에서 직장을 잡은 친구들은 대부분 나처럼 결혼하지 않은 상태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며 '언제 시집갈래?'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결혼 생각이 없다'고 대답하면 '연애를 해 봐라', '결혼하면 달라질 거다'는 말들을 줄줄 쏟아붓는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안에선 감성과 이성이 충돌한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적으로 다시 생각해보면 20대 중반에 '결혼해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20대 후반까지 약 5년간 나는 방송국의 비정규직 피디로 일했는데 일하는 만큼 내 능력만큼 돈을 벌 수 있어 크게 불만은 없었다. 젊은 남녀가 모여 있는 곳이었기에 축하할 일도 많았다. 하지만 한 여자 선배의 결혼이 계기가 됐다. 결혼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됐는데 임신과 육아가 문제였던 거다. 프리랜서였기에 휴가가 따로 없어 아이를 낳고 기르려면 일을 그만둬야 했다. 옆에 있는 남자 선배는 아이가 커갈수록 일에 더 매진했는데 여자 선배는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둬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래서 이직을 결심했다. 혹시 모를 내 삶에서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가 내 발목을 붙잡지 않도록 '정규직' 일자리를 갖자고. 하고 싶은 일을 그만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택했던 건 어쩌면 내 인생에 결혼과 출산이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는 애매모호함 때문이었다.
연차가 10년을 넘기면서 삶에 대한 가치관이 분명해졌다. 내 인생에 결혼이 꼭 필요한가? 답은 '아니'었다. 혹자는 이런 내게 '편협한 생각이다' 할 수도 있지만 내겐 결혼이 필요하지 않다. 내게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주거'와 '일'. 고단한 하루 끝에 휴식할 집과 오랜 시간 나의 생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줄 직장이 필요한 거지, 결혼이라는 제도와 배우자가 필요하지 않다. 육아 역시 남의 이야기일 뿐. 혹시 모를 결혼과 육아 때문에 정규직 일자리를 소원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연차가 늘어갈수록 내 인생에서 결혼이란 단어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나 혼자 산다고 꿈꾸는 미래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나와 더 친밀해지고 싶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배우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늘리고 싶다. 결혼이라는 건 개인과 개인의 만남에 그치는 게 아니라 가족 간의 결합이기에 챙길 일도 많고, 자녀가 생긴다면 그에 대한 책임감 또한 늘어난다. 그런 것에 내 삶을 소모하는 것 대신 나 자신을 살피는 삶을 살고 싶은 것뿐이다.
나는 지금의 내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삶을 완성하기 위한 그림을 천천히 그리고 있는 중이다. 부모 세대가 보기에 이런 내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부모가 갔던 길들을 자녀가 꼭 뒤따라갈 필요가 있을까? 인생에서 가장 큰 가치를 다름 아닌 '나' 자신에게 두고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나와 같은 청년을 본다면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보편적인 삶이 아닌 새로운 삶을 만들려는 그들을 응원해 주길 바란다.
* 이 글은 익산참여연대 소식지 참여와자치 97호 청년이야기에 실린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