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선거는 이제 그만,
희망을 만들어 보자, 시민정치여!
19대 총선이 끝났다. 한 여름의 소낙비처럼 작은 도시인 익산을 떠들썩하니 흔들어 놓고 지나갔다. 막상 내리 부을 때는 모든 것을 쓸어 갈 듯이 요란을 떨었지만, 결국 지나간 자리에 생채기가 남아 뒤끝을 감당해야 할 처지다. 누가 감당할 것인가. 물론 고소, 고발에 따른 후폭풍이야 당사자인 후보들이 짊어지면 될 일이다. 하지만 이것 뿐 이랴. 정작 큰 것은 그게 아니다. 상처받은 시민들의 마음이 문제다.
혁신과 변화를 통해 새바람을 일으켜 보라는 국민들의 염원이 있었다. 비전과 가치를 만들고, 국민의 마음에 와 닿는 정책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시킬만한 참신한 인물을 통해 낡은 정치의 변화를 바라는 기대와 바램이 절실했다. 하지만 상황은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혁신과 변화의 노력이나 내용은 뒷전으로 밀리고 일단 선거부터 치루고 보자는 요구가 앞섰다. 일단 이기고 보자는 것이다. 무엇으로? 덩치를 키워서 한판 붙자는 것이다. 해서 민주통합당이 나오고 통합진보당이 나왔다. 옥신각신 끝에 호남을 제외하고 공천연대도 이뤄냈다. 그리고 낙관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국민들의 염원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오히려 왜곡됐다. 일단 저쪽이 미우니 표만 달라는 식이었다. 새로운 내용과 방식은 없었다. 일단 되고 보자는 논리가 지배했다. 파벌이 요동치고 내 사람 만들기가 기승을 부렸다. 공천심사는 신뢰를 잃었고, 전북 완산 갑처럼 전략공천에 밀려 주민의 의사가 무시되는 사태가 발생되었다. 비례대표도 영입인사조차 낙선시키는 막장을 연출했다. 도대체 민주통합당의 경우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문제는 경선과정에서 분명해졌다. 국민경선을 치루면서 조직, 금품제공 등의 부정시비가 불거져 나왔고, 통합진보당의 경우는 부정투표 시비까지 제기되었다.
선거운동을 보더라도 시민들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익산을 선거구에서 보인 선거양태는 잘못된 선거문화의 모든 것을 보여 주었다. 조직 동원경선과 도서무료배포 등에 대한 시비, 경선과정에서 금품을 받았다는 양심선언과 고발, 재산 허위신고에 대한 조사와 고발, 종교의 정치관여 등으로 선거 자체가 법과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 버렸다. 후보들의 정책과 공약은 사라지고 인신공격과 정치공세가 난무했다. 무엇을 하자는 선거인지, 시민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에서 선거는 더 이상 기쁨이 되지 못하고 불편하기만 한 자리가 되었다.
정치는 왜 불신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것일까.
오랜 세월 많은 정치인이 있었고 수많은 정당들이 정치사를 장식했다. 하지만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정치문화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세대교체도 있었고, 새 인물도 있었다. 정당도 이름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면서 존속해 왔다. 그래도 달라지지 않는 것은 역시나 그대로다. 무엇이 문제인가. 정치의 주체가 누군가에서 찾을 수 있다.
대의제인 정당정치를 기본으로 하면서 많은 정치인들이 시민과 국민을 대표하였다. 시민들이 정치의 주체라고 생각할 만한 순간은 오직 선거 때 투표장에서였다. 그나마 나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하는 직접적인 정치행위가 아니라 대리자를 뽑는 일이었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허리 숙이다가도 당선되고 나면 뻣뻣해 지는 이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치의 진정한 주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정치인이라고 답해야 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달라질 것이 없다는 자각을 하기 시작한 시민들이 있다. 삶의 터전인 지역에서 이웃들과 함께 생각을 나누고, 요구를 모으고, 십시일반으로 힘을 키워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정치일선에 뛰어든 것이다. 성미산마을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운동을 시민정치운동이라 할 수 있다.
시민정치운동이 뭔가? 한마디로 시민을 정치의 주인으로 세우는 운동이다. 민원이나 하는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선거 때 표만 찍는 대상화된 존재가 아니라 그 어떤 정치인도 시민들을 벗어나거나 뛰어 넘을 수 없도록 시민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로 성장해 가는 운동이다.
선거 때 갑자기 나타나 표를 달라고 하는 후보가 아니라 시민들 속에서 함께 부대끼며 이웃과 지역을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성장하고 지지받는 정치인을 세우는 운동이다.
이러한 운동은 시민의 생각을 바꾸고 시민의 위치와 역할을 바꾸고 새로운 비전과 가치를 가진 정치인을 준비하면서 시스템과 문화마저 바꿔갈 수 있는 힘을 키워가게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가장 늦다는 정치도 이제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내일 누군가가 다시 한번 정치의 진정한 주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시민이다’고 대답해야 희망이다.
새로운 판으로 희망을 만들어 보자 시민정치여!
글 이영훈 (익산참여연대 운영위원)
* 이 글은 참여와자치 소식지 2012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불편한 선거는 이제 그만,
희망을 만들어 보자, 시민정치여!
19대 총선이 끝났다. 한 여름의 소낙비처럼 작은 도시인 익산을 떠들썩하니 흔들어 놓고 지나갔다. 막상 내리 부을 때는 모든 것을 쓸어 갈 듯이 요란을 떨었지만, 결국 지나간 자리에 생채기가 남아 뒤끝을 감당해야 할 처지다. 누가 감당할 것인가. 물론 고소, 고발에 따른 후폭풍이야 당사자인 후보들이 짊어지면 될 일이다. 하지만 이것 뿐 이랴. 정작 큰 것은 그게 아니다. 상처받은 시민들의 마음이 문제다.
혁신과 변화를 통해 새바람을 일으켜 보라는 국민들의 염원이 있었다. 비전과 가치를 만들고, 국민의 마음에 와 닿는 정책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시킬만한 참신한 인물을 통해 낡은 정치의 변화를 바라는 기대와 바램이 절실했다. 하지만 상황은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혁신과 변화의 노력이나 내용은 뒷전으로 밀리고 일단 선거부터 치루고 보자는 요구가 앞섰다. 일단 이기고 보자는 것이다. 무엇으로? 덩치를 키워서 한판 붙자는 것이다. 해서 민주통합당이 나오고 통합진보당이 나왔다. 옥신각신 끝에 호남을 제외하고 공천연대도 이뤄냈다. 그리고 낙관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국민들의 염원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오히려 왜곡됐다. 일단 저쪽이 미우니 표만 달라는 식이었다. 새로운 내용과 방식은 없었다. 일단 되고 보자는 논리가 지배했다. 파벌이 요동치고 내 사람 만들기가 기승을 부렸다. 공천심사는 신뢰를 잃었고, 전북 완산 갑처럼 전략공천에 밀려 주민의 의사가 무시되는 사태가 발생되었다. 비례대표도 영입인사조차 낙선시키는 막장을 연출했다. 도대체 민주통합당의 경우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문제는 경선과정에서 분명해졌다. 국민경선을 치루면서 조직, 금품제공 등의 부정시비가 불거져 나왔고, 통합진보당의 경우는 부정투표 시비까지 제기되었다.
선거운동을 보더라도 시민들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익산을 선거구에서 보인 선거양태는 잘못된 선거문화의 모든 것을 보여 주었다. 조직 동원경선과 도서무료배포 등에 대한 시비, 경선과정에서 금품을 받았다는 양심선언과 고발, 재산 허위신고에 대한 조사와 고발, 종교의 정치관여 등으로 선거 자체가 법과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 버렸다. 후보들의 정책과 공약은 사라지고 인신공격과 정치공세가 난무했다. 무엇을 하자는 선거인지, 시민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에서 선거는 더 이상 기쁨이 되지 못하고 불편하기만 한 자리가 되었다.
정치는 왜 불신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것일까.
오랜 세월 많은 정치인이 있었고 수많은 정당들이 정치사를 장식했다. 하지만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정치문화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세대교체도 있었고, 새 인물도 있었다. 정당도 이름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면서 존속해 왔다. 그래도 달라지지 않는 것은 역시나 그대로다. 무엇이 문제인가. 정치의 주체가 누군가에서 찾을 수 있다.
대의제인 정당정치를 기본으로 하면서 많은 정치인들이 시민과 국민을 대표하였다. 시민들이 정치의 주체라고 생각할 만한 순간은 오직 선거 때 투표장에서였다. 그나마 나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하는 직접적인 정치행위가 아니라 대리자를 뽑는 일이었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허리 숙이다가도 당선되고 나면 뻣뻣해 지는 이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치의 진정한 주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정치인이라고 답해야 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달라질 것이 없다는 자각을 하기 시작한 시민들이 있다. 삶의 터전인 지역에서 이웃들과 함께 생각을 나누고, 요구를 모으고, 십시일반으로 힘을 키워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정치일선에 뛰어든 것이다. 성미산마을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운동을 시민정치운동이라 할 수 있다.
시민정치운동이 뭔가? 한마디로 시민을 정치의 주인으로 세우는 운동이다. 민원이나 하는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선거 때 표만 찍는 대상화된 존재가 아니라 그 어떤 정치인도 시민들을 벗어나거나 뛰어 넘을 수 없도록 시민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로 성장해 가는 운동이다.
선거 때 갑자기 나타나 표를 달라고 하는 후보가 아니라 시민들 속에서 함께 부대끼며 이웃과 지역을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성장하고 지지받는 정치인을 세우는 운동이다.
이러한 운동은 시민의 생각을 바꾸고 시민의 위치와 역할을 바꾸고 새로운 비전과 가치를 가진 정치인을 준비하면서 시스템과 문화마저 바꿔갈 수 있는 힘을 키워가게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가장 늦다는 정치도 이제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내일 누군가가 다시 한번 정치의 진정한 주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시민이다’고 대답해야 희망이다.
새로운 판으로 희망을 만들어 보자 시민정치여!
글 이영훈 (익산참여연대 운영위원)
* 이 글은 참여와자치 소식지 2012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