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뉴시스>
민주주의자 김근태'를 보내며.
발인이다.
해를 넘기며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져 오늘,
이제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다.
풀어내지 못한 속내와 숱한 감정이 교차하지만 그래도 붙잡을 수는 없다.
이제 평화과 안식의 자리에 들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다.
숱한 곤란과 역경이라는 표현에 딱 맞는 일생이었다.
특히 남영동과 이근안으로 표현되는 20여일간의 고문은 독재와 폭력의 만행은 물론
신음하는 민중과 민주주의의 추락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많은 양심들이 용기와 희망을 결연히 세우는 계기가 되었고,
청춘들이 앞다퉈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시대가 펼쳐졌다.
어느덧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곁에는 지역과 부문을 넘어 많은 이들이 팔짱을 꼈다.
민주의 장도에서 '김근태'는 중심이었고 정신적 지주가 되어 있었다.
국민의 정부를 지나 참여정부가 들어 섰을 때,
우리 사회의 민주적 진전과 정착을 위해서는 노무현 다음으로 '김근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그래야 민주화운동의 긴 여정이 일단락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때가 생각난다.
억울하고 안타깝지만 희망은 좌절이 되었고,
기나긴 고통과 나락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 기간 그의 삶은 고문후유증으로 망가지는 육체와 싸우는 시간이 깊어졌다.
그의 육체가 망가지고 죽어가는 만큼 국민들의 고통과 절망이 커가고 죽음의 나락이 깊어갔다.
어둠과 절망속에서 누구도 그를 찾는 이는 없었다.
그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우리도 죽어가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MB의 실정은 그렇다해도 이미 많은 부분에서 실리와 작은 이익이 대의를 삼키고 있었다.
가치와 결속으로 풀어 나가지 못하고 사욕과 따로 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죽여가고 있지 않은가.
때론 대의조차 이익에 가려 무엇이 진짜인지 흐릿해지는 세상이다.
아, 이제 큰 가슴으로 대의와 가치를 품고 나아갈 바를 가리키며 함께 하자고 외칠 자,
어디서 볼 것인가.
당장의 이익보다, 개인이나 소수의 욕구보다
나라와 미래의 희망을, 가치와 정도의 길에서 살리고자 했던 큰 정치를 그대 떠난 지금,
어느 누가 만들어 갈 것인가.
엄혹한 시기 좌표가 되어준 등불이었고,
의지와 인내의 정신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 잡아준 정신적 지주였으며,
따뜻한 미소와 겸손함으로 많은 이들의 벗이 되어준 큰 사람.
'민주주의자 김근태'.
아무리 작은 지역이지만 너무 쓸쓸히 보내는 것은 아닌지 죄스러울 뿐입니다.
지난 일요일,
우석대 본관 분향소에 들렀을 때의 그 황량함과 적막감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대학의 젊은 직원이 지키고 있는 분향소의 모습에서
오랜 고통끝에 떠나는 그분의 아픔이 전해오는 듯 하였습니다.
해서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그 분의 일생을 거울삼아 비친 내 모습은 어떤지를 생각하면서...
먼저 가신 노무현 전대통령은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떠나는 '김근태'님은 이렇게 외칩니다.
'참여하는 사람이 권력을 만들고 세상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남은 자의 몫입니다.
이 겨울,
끝이 보이는 것 같네요.
글 이영훈 (익산참여연대 운영위원)
민주주의자 김근태'를 보내며.
발인이다.
해를 넘기며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져 오늘,
이제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다.
풀어내지 못한 속내와 숱한 감정이 교차하지만 그래도 붙잡을 수는 없다.
이제 평화과 안식의 자리에 들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다.
숱한 곤란과 역경이라는 표현에 딱 맞는 일생이었다.
특히 남영동과 이근안으로 표현되는 20여일간의 고문은 독재와 폭력의 만행은 물론
신음하는 민중과 민주주의의 추락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많은 양심들이 용기와 희망을 결연히 세우는 계기가 되었고,
청춘들이 앞다퉈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시대가 펼쳐졌다.
어느덧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곁에는 지역과 부문을 넘어 많은 이들이 팔짱을 꼈다.
민주의 장도에서 '김근태'는 중심이었고 정신적 지주가 되어 있었다.
국민의 정부를 지나 참여정부가 들어 섰을 때,
우리 사회의 민주적 진전과 정착을 위해서는 노무현 다음으로 '김근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그래야 민주화운동의 긴 여정이 일단락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때가 생각난다.
억울하고 안타깝지만 희망은 좌절이 되었고,
기나긴 고통과 나락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 기간 그의 삶은 고문후유증으로 망가지는 육체와 싸우는 시간이 깊어졌다.
그의 육체가 망가지고 죽어가는 만큼 국민들의 고통과 절망이 커가고 죽음의 나락이 깊어갔다.
어둠과 절망속에서 누구도 그를 찾는 이는 없었다.
그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우리도 죽어가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MB의 실정은 그렇다해도 이미 많은 부분에서 실리와 작은 이익이 대의를 삼키고 있었다.
가치와 결속으로 풀어 나가지 못하고 사욕과 따로 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죽여가고 있지 않은가.
때론 대의조차 이익에 가려 무엇이 진짜인지 흐릿해지는 세상이다.
아, 이제 큰 가슴으로 대의와 가치를 품고 나아갈 바를 가리키며 함께 하자고 외칠 자,
어디서 볼 것인가.
당장의 이익보다, 개인이나 소수의 욕구보다
나라와 미래의 희망을, 가치와 정도의 길에서 살리고자 했던 큰 정치를 그대 떠난 지금,
어느 누가 만들어 갈 것인가.
엄혹한 시기 좌표가 되어준 등불이었고,
의지와 인내의 정신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 잡아준 정신적 지주였으며,
따뜻한 미소와 겸손함으로 많은 이들의 벗이 되어준 큰 사람.
'민주주의자 김근태'.
아무리 작은 지역이지만 너무 쓸쓸히 보내는 것은 아닌지 죄스러울 뿐입니다.
지난 일요일,
우석대 본관 분향소에 들렀을 때의 그 황량함과 적막감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대학의 젊은 직원이 지키고 있는 분향소의 모습에서
오랜 고통끝에 떠나는 그분의 아픔이 전해오는 듯 하였습니다.
해서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그 분의 일생을 거울삼아 비친 내 모습은 어떤지를 생각하면서...
먼저 가신 노무현 전대통령은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떠나는 '김근태'님은 이렇게 외칩니다.
'참여하는 사람이 권력을 만들고 세상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남은 자의 몫입니다.
이 겨울,
끝이 보이는 것 같네요.
글 이영훈 (익산참여연대 운영위원)